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병철 씨(41)는 2주째 골프장 예약을 하지 못해 마음이 급하다. 예년과 달리 친구들과 국내에서 골프 시즌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주말은 물론 평일 티 타임도 구하지 못해서다. 김씨는 “매년 11월 말~12월 초 일본에서 납회를 하다가 올해는 국내에서 하기로 했다”며 “지방의 싼 퍼블릭도 좋은 시간을 찾기 힘들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골프업계가 ‘부킹대란’을 겪고 있다. ‘가을 골프는 빚을 내서라도 친다’는 말을 감안해도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11말 12초’까지 풀부킹이 넘쳐나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평가다. 회원제, 대중제 할 것 없이 12월 초까지 빈자리를 찾기 힘들 뿐 아니라 대기 인원도 전년 대비 두 배까지 늘었다는 게 골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경기 포천의 A골프장 예약팀장은 “지난해 이맘때쯤엔 하루 대기 인원이 10팀가량이었지만 올해는 20팀 안팎으로 늘어났다”며 “없는 새벽 티타임을 만들어서라도 빼달라는 등의 부킹 부탁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수도권뿐 아니다. 경북 포항에 있는 B골프장 대표는 “경기는 안 좋다는데 손님은 작년보다 눈에 띄게 많아져 하루 3부를 꽉꽉 채워 돌리고 있다. 12월 초까지는 비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며 “업계 모임에 나가 보면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두 자릿수가량 늘었다는 골프장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골프장들도 예상 못한 호황에 놀라긴 마찬가지다.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날씨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서울과 경기 강수량은 745.3㎜로, 평년(1111㎜)의 약 67%에 그쳤다. 올여름 전국 폭염 일수는 13.3일로, 작년(31.4일)의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이런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가 늦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천범 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세 차례 가을 태풍이 있었지만 적은 비와 약한 더위 효과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며 “올해 골프장 이용객은 역대 최고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용객 수는 2017년 3625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3584만 명으로 감소했다. 올해는 38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서 소장은 보고 있다.
스크린골퍼가 필드로 대거 유입된 것도 주요인으로 꼽힌다. 스크린골프 시장을 주도한 골프존은 2000년 5월 출범했다. 올해가 꼭 20년째. 2만~3만원 안팎에 스크린을 즐기던 20~30대가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된 40~50대가 되면서 20만~30만원의 비용을 감당할 만한 필드 골퍼로 하나둘 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원CC 관계자는 “돈을 악착같이 모으기보단 자신의 삶을 즐기는 방향으로 바뀌는 라이프 트렌드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구력을 물어 보면 ‘스크린 몇 년, 필드 몇 년’ 식으로 구분해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골프 관광을 꺼리는 수요도 골프장 호황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킹 대행업체 골프유의 정순애 이사는 “올가을 ‘일본에 안 가고 국내에서 치려고 한다’며 여행사를 통하거나 개인적으로 부킹을 의뢰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반사이익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부킹 대행업계에서 일한 지 10년째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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