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창설 60주년을 맞는다. 1960년 바그다드에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 다섯 나라가 뭉쳐 서구 석유자본에 맞서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했을 때만 해도 그들의 힘은 역부족인 듯했다. 이후 국가 간 전략적 제휴를 하고 몸집을 키워가던 OPEC은 결정적으로 1973년 10월 아랍·이스라엘 간 4차 중동전쟁 발발로 대전환기를 맞았다.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무기화 조치를 취한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서방국가에 원유 공급을 중단한 미증유의 사태에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오일쇼크’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였다. 점차 석유 대체에너지가 개발되면서 2018년 석유 의존도가 33%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원유와 가스의 80% 이상을 중동에서 도입했는데, 2018년에는 중동 비중이 61%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 기간 세계 가스 소비 비중은 17%에서 24%로 큰 폭 상승했다. 탈(脫)석유 현상 조짐이 뚜렷한 지표다. 석탄과 석유, 심지어 원자력에 비해서도 가스 에너지는 안전성 및 친환경 측면에서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더욱이 석유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자동차가 자율주행 전기차(수소전기차)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가스 기반의 전기시대를 견인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 수요도 큰 변수다. 중국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웨이를 인용한 여시재 에너지연구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공지능(AI)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연간 33.3%씩 증가할 전망이다. 2025년에는 세계 전력 소비의 23%가 ICT 계열, 그중 13%포인트는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토대로 새로운 에너지 패권국가로 부상함에 따라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탈중동 정책이 가시화되고 있는 배경이다.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가 이뤄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의 출구 전략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공백을 또 다른 에너지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100만 배럴의 석유 수입국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최근 사우디 정유회사 아람코 기업공개에 100억달러 지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최대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에너지 남진 정책도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던 가스 물량의 약 90%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상황에서 2014년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을 사실상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빠져나간 힘의 공백을 메워나갈 것이다. 현재 가스 생산 1위국인 카타르를 필두로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 이란 등 가스 강국과 러시아의 협력 구도는 미국 중심의 에너지 패권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중동 산유국들도 탈석유 정책에 사활을 걸면서 원자력,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는 2023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1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원자로 1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요르단, 모로코, 터키, UAE 등 다른 중동국가도 원자력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동 국가의 또 다른 에너지 전략 축은 태양광이다. 이 지역은 태양에너지 발전설비 설치 및 육상 풍력단지 조성에 적합한 넓은 사막은 물론 풍부한 일조량과 일광시간, 적은 강수량과 풍속의 안정성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장 효율성이 높다는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태양광 발전 누적 설치량이 2배 이상 많다. 지상 풍력보다 발전 효율이 높은 해상 풍력 발전도 가능하다. 미국의 탈중동화와 급변하는 에너지 구도에 우리의 중동 진출 전략도 세심하게 재점검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