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귀순 의사 외면한 反헌법적 '강제 북송'

입력 2019-11-13 18:22
수정 2019-11-14 00:11
동해를 거쳐 들어온 탈북민 두 명이 지난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추방’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국회에 출석 중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휴대전화로 추방 사실을 직보한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포착되면서 공개됐다. 정부가 이들 탈북민의 ‘2일 삼척 귀순’ 사실은 물론, 추방도 비밀리에 추진하다 드러난 것이다.

추방된 탈북민 두 명은 사흘간의 조사 과정에서 자필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의 의사를 타진한 뒤 추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뒤늦은 발표대로 이들 탈북민이 작은 배 안에서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면 추가 규명을 해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서둘러 추방한 것 자체가 석연치 않다.

정부는 추방을 결정한 근거로, ‘살인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북한이탈주민보호법(제9조2항)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법조항은 ‘추방 결정의 타당성’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정착지원 보호 대상자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 법조항을 적용해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 탈북자도 여럿 있다. 정부는 이 법의 입법취지와 전례를 외면하고 탈북민을 사지(死地)로 내몬 것이다.

북한 사법체계의 잔혹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 탈북민은 자해를 하면서까지 북송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추방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눈을 가렸고 경찰이 동행했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외면한 정부의 결정은 반(反)인도적 나쁜 결정이다.

이번 추방조치는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 우리 헌법은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물며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이들이 영해에서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조치했어야 한다.

사흘간 조사한 뒤 서둘러 추방을 결정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15m가량의 17t급 소형 목선에서 동선한 16명을 살해하는 게 가능했는지 국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는 이런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추방 여부는 정밀 조사를 마친 뒤 결정했어도 늦지 않았다는 얘기다.

경직된 남북관계 개선을 구실로 대북(對北) 저자세를 지속해온 게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막말과 미사일 도발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정부 태도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탈북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북송도 나쁜 선례일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를 거부한 인사가 탈북한 경우에도 북한이 ‘흉악범’으로 낙인찍고 북송을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는 전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지금도 북한은 많은 탈북자들에게 범죄 혐의를 들이대면서 송환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이번 사건이 알려지게 된 휴대폰 문자메시지 직접 보고는 정부 시스템 붕괴와 군 기강 해이를 노출했다. 국방부 장관을 건너뛴 청와대 직보는 사건을 처음부터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북한 관련 사건의 은폐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북한 목선의 ‘삼척항 해상 노크 귀순’도 은폐하려다 주민들이 제시한 사진에 의해 확인됐다. 이번에도 언론 카메라가 문자메시지를 포착하지 못했더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사건을 감추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더 많은 큰 사건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남북관계를 개선해 긴장을 늦춰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反)헌법적, 반인도적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확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