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도 '취향 시대'…프리米엄이 먹힌다

입력 2019-11-13 17:55
수정 2019-11-14 00:59
‘골든퀸, 하이아미, 밀키프린세스, 용의 눈동자.’

올해 잘 팔린 쌀의 품종이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약 61㎏. 3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향과 찰기, 영양성분이 색다른 프리미엄 쌀의 판매량은 매년 늘고 있다. 고시히카리, 아키바레(추청) 등 수십 년간 프리미엄 쌀 시장을 장악하던 일본 품종을 대체하는 국산 브랜드가 쏟아지고 있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쌀 ‘의성진쌀’은 올 들어 9월까지 작년과 비교해 판매가 83.8% 늘었다. 롯데마트에서도 신동진쌀, 수향미 등이 전년보다 30% 이상 더 팔렸다. SSG닷컴에서는 올 들어 프리미엄 쌀 판매량이 전년보다 161% 늘었다.

日품종이 지배해온 고급 쌀 시장


국내 쌀 시장은 수십 년간 ‘최대한 많이 수확할 수 있는 건강한 벼’가 지배했다. 배고픈 시절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산 쌀은 사라져 갔다. 국산 쌀의 수난은 일제 때 시작됐다. 1910년까지 토종벼 품종만 1400여 종에 달했지만 일제가 식량 수탈을 노리며 빨리 자라고, 낟알이 많이 열리는 개량종을 대대적으로 뿌렸다. 이후 박정희 정부 때 키 작고 병충해에 강한 ‘통일벼’를 전국에 확산시켰다. 품종은 단일화됐다. 맛은 없지만 생산량은 많았다.

1970년대 ‘밥맛 좋은 쌀’을 찾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1950년대 개발한 고시히카리, 아키바레 등의 품종이 수입됐다. 국내 쌀 생산량의 약 10%가 아직도 일본 품종인 배경이다. 일본 품종은 병충해에는 약하지만 ‘맛있는 쌀’이라는 인식 때문에 국산 일반 품종보다 15~20% 높은 가격에 팔렸다.

골든퀸이 연 ‘토종쌀 프리미엄’ 시장

‘일본쌀=맛있다’는 공식을 깬 건 민간 육종가들이다. 골든퀸은 민간 육종가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가 21년간 개발한 쌀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개발했다. 찰기와 식감, 향도 좋다. 2016년 시장에 나왔다. 소비자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농민들에게 다양한 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골든퀸3호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돼 조선향미, 월향미, 수향미, 향미나라 등의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현대쌀집 관계자는 “과거 이천쌀, 오대쌀 등 지역 이름이 붙은 쌀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품종과 브랜드를 앞세운 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도 재래종 벼 4497종의 품종을 소수 농가와 함께 재배하고 있다. 삼광벼와 진수미, 맛드림, 대보, 영호진미, 예찬미 등이다.

‘싸전’의 부활…2㎏ 소포장 판매 급증

이런 고급 쌀에 대한 요구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지승익 홈플러스 건강기능식품 바이어는 “국민 1인당 쌀소비는 줄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한 끼를 먹더라도 기능성 쌀이나 친환경 쌀로 밥을 짓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쌀 가격이 계속 오르며 일반 쌀과 고급 쌀의 소매 가격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프리미엄 쌀 소비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쌀의 품종별 소비는 판매 단위도 바꿔놨다. 10~20㎏ 단위로 사던 쌀 포장은 이제 2~6㎏ 단위의 소포장으로 바뀌고 있다. 작은 쌀가게 ‘싸전’도 늘고 있다. 2017년 말 서울 성산동에 문을 연 ‘동네정미소’는 서교동에 이어 최근 수원 앨리웨이 광교몰에도 식당 겸 매장을 냈다. 400g씩 다양한 품종의 토종 쌀과 개량 쌀을 판매한다. 이천 출신인 두 대표가 차린 쌀가게 ‘도정공장’은 단일품종 외에도 ‘삼색미’라는 브랜드의 혼합쌀을 구성해 정기구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김보라/박종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