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끌던 '개망신법' 처리 합의…익명 개인정보 활용 길 열린다

입력 2019-11-12 17:26
수정 2019-11-13 01:12
법안 제출 후 1년간 끌어온 ‘빅데이터 3법’이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긴 정치권의 늦깎이 합의로 연내 처리 가능성이 커졌다. 이른바 ‘개망신’법으로 불리는 빅데이터 3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며 조속한 입법을 수차례 당부했지만 제대로 된 법안 심의조차 하지 못했다. 정보기술(IT)업계는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이 정쟁으로 국회에서 막히는 구태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9일 본회의 통과시키겠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12일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해온 빅데이터 3법을 ‘톱다운(지도부 합의) 방식’으로 오는 1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각 상임위원회가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부친 국가유공자 특혜 논란’(정무위원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행정안전위원회) 등의 정쟁으로 장기 파행한 탓에 20대 국회를 넘겨 자동 폐기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이 너무 뒤처져 있다”며 “(데이터 3법부터) 최대한 우선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다만 “(19일에) 3법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두 건을 할 수 있는지는 진행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3법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명 처리한 개인정보(가명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내용이다.

다만 정치권에선 현실적인 이유로 19일엔 행안위에 계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은 “여아 간 의견차는 대부분 다 좁힌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현행법은 의료·건강정보 등을 활용할 때 당사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 처리한다고 해도 예외를 인정받기 힘든데, 앞으론 이런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IT업계 “의료·금융 등 신사업 가능”

정무위(신용정보보호법)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정보통신망법)는 아직 법안 논의를 위한 법안 심사 소위 일자를 잡지 못했다.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유동수 위원은 “법안 소위와 정무위 전체회의 일정을 1주일 안에 잡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무위는 21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 예정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상정된 과방위는 한 번도 법안을 심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빅데이터 3법의 모법인 개인정보보호법이 통과되면 나머지 법안들은 법안소위를 연 뒤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홍 의원은 “19일 본회의 이후 본격적인 속도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IT업계는 즉각 환영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의료와 금융 등 빅데이터가 곧바로 신사업으로 이어지는 분야들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는 대웅제약,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헬스케어 합작법인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했다. 카카오도 올 1월 서울아산병원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 빅데이터 업체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세웠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은 의료·건강정보를 활용할 때 당사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가명 처리를 통한 사업이 가능해지면 구글의 헬스케어 자회사 베릴리와 같은 성공 사례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베릴리는 30만 명의 안구를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로 유명하다.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은 마지막 숙제다. 민주당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 당시 시민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며 “법안 수정 없이 최대한 원안으로 통과시켜 규제개혁 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