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 4년6개월 만에 최대 규모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금 보유를 늘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설비투자는 줄이는 등 경기를 관망하는 양상이 역력하다.
은행 차입, 회사채 발행 동반 급증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2019년 10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신규 대출-회수액)은 지난달 6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5년 4월(6조6000억원) 후 최대 규모다.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아 회사채 발행이 어렵다 보니 은행 대출을 주요 자금조달 창구로 삼는다. 올해 1~10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은 46조1000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기준 대출 순증액은 2015년(52조8000억원) 후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자금확보 수단으로 주로 활용하는 회사채도 발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3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7월(3조8000억원)을 제외하면 2012년 10월(4조1000억원) 후 7년 만에 최대 규모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 회사채 순발행액은 17조2000억원에 달했다. 이 추세를 이어갈 경우 회사채 순발행액은 2012년(17조5000억원) 후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늘린 배경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회사채 발행이 늘어난 것은 낮은 시장금리 등 발행 여건이 좋아진 영향도 있다.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이날 연 2.064%를 기록했다. 연중 최저인 지난 8월 16일(연 1.626%)보다 올랐지만 지난해 말(연 2.287%)보다는 여전히 낮다.
설비투자는 6분기째 감소
기업들의 자금마련 움직임이 분주해졌지만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설비투자금으로 쓰지는 않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지난해 2분기부터 올 3분기까지 여섯 분기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원계열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자금 조달 규모를 늘렸지만 투자에는 소극적이다 보니 보유 현금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8월 말 기업이 은행에 맡긴 예금은 420조2851억원으로 지난 1월 말(405조186억원)과 비교해 15조2665억원 증가했다.
기업들이 곳간에 현금을 쌓는 것은 국내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데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코스닥 상장사인 에이스침대는 최근 제출한 3분기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경제 흐름이 나빠지고 국내 경기도 침체되면서 경영환경이 악화된 많은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경영 내실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차전지 부품을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사 에이에프더블류도 3분기 보고서에서 “미국발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민간 소비 심리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고용 현황도 나빠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