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백화점' 통했다…신세계, 사상최대 실적

입력 2019-11-12 17:08
수정 2019-11-13 01:56
2004년 9월 어느 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1330억원을 주고 부산 수영만 땅을 사겠습니다.” 한 임원이었다. 이 회장은 “허허벌판인데…”라고 말하며 끊었다. 경영진의 결정을 신뢰했다. 이 땅은 2009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 됐다. 이후 신세계는 ‘지역 거점’ 전략을 썼다. 각 지역에서 다른 백화점을 압도하는 크기로 지었다. 대형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사람을 끌어모은 결과 부진한 다른 백화점과 달리 3분기 사상 최대 이익 기록을 달성했다.


대형화 통해 실적 방어

신세계는 올해 3분기에 매출(연결 기준) 1조602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7.3% 늘었다. 영업이익은 36.6% 증가한 959억원에 달했다.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치 8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신세계백화점만 놓고 보면 3분기에 매출 3851억원을 냈다. 작년 3분기에 비해 10.9% 감소했다. 이는 인천점을 롯데에 넘긴 영향이다. 인천점을 제외하면 매출은 4.6% 늘었다. 영업이익은 660억원으로 12.2%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은 같은 기간 매출이 감소했다.

이런 실적의 1등 공신은 대형화 전략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가 1위로 확실히 자리 잡은 2000년대 중반 백화점 사업 전략을 수립했다. ‘지역 1등 백화점 전략’이 나왔다. 이후 문을 열거나 증축한 매장인 강남점, 부산 센텀시티점, 대구점, 광주점 등은 모두 1위에 올랐다.

명품 판매 증가 최대 수혜

소비 트렌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한 것도 신세계의 질주를 도왔다. 키워드는 명품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해외 명품 매출 비중은 30% 중반으로 23.5% 수준인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 소비 양극화로 명품만 성장하는 소비트렌드는 신세계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백화점 3사의 해외 명품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13.2% 증가했다. 백화점 전체 매출은 같은 기간 0.8% 감소했다. 명품이 ‘나홀로 호황’을 누린 셈이다. 다른 백화점들이 뒤늦게 명품 라인을 보강하고 있지만 명품 입점은 최소 3~4년이 걸리는 일이어서 바로 대응이 안 된다. 신세계가 ‘명품 선점 효과’를 크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명품사업은 오너가 직접 나섰다. 이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명품 브랜드와 관계를 쌓고 주요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 역할을 했다.

면세점·화장품 등으로 성공적 확장

신세계백화점은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면세점은 백화점과 가장 큰 시너지를 냈다. 2016년 시내면세점 사업에 진출한 후 신세계백화점 본점 일부 공간을 면세점으로 바꿨다. 작년 7월에는 강남점에도 면세점을 넣었다. 인천공항에서도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신세계면세점 매출은 작년 2조원을 넘었다. 올해는 3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명품 유치에 신세계가 성공하면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신세계 자회사 대부분은 면세점처럼 큰 시너지 효과를 내서 성장했다. 패션과 화장품 사업을 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3분기에 매출 3599억원, 영업이익 1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5.5%, 늘고 영업이익은 66% 급증하며 신세계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데 기여했다. 가구 사업을 하는 까사미아의 매출 증가율은 27.4%에 달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