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방위비협상서 트럼프가 간과한 것

입력 2019-11-12 17:52
수정 2019-11-13 14:12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알래스카에서 탐지하면 15분이 걸리지만 주한미군은 7초면 탐지할 수 있다. 북한의 ICBM이 미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때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8분. ICBM 발사를 7초 만에 탐지하느냐, 15분 만에 탐지하느냐는 미국 안보와도 직결된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한 대목이다.

이런 구절도 있다. 2017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 10억달러를 써가며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이유를 따졌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한국이 아니라 우리(미국)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걸고넘어졌다. “주한미군 배치로 우리가 얻는 이익이 뭔가.” 매티스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 건 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섭니다.”

5배 인상은 비상식적

미국이 내년 이후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에 약 50억달러를 요구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장면들이다. 50억달러는 올해 한국 분담금의 다섯 배 수준이다. 동맹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상식적으론 나올 수 없는 요구다. 미 협상팀에도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적지 않은 듯하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한 방송에 출연해 “우리 협상팀 대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 협상팀도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50억달러라는 수치를 들고나온 건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부터 한국 등 동맹을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여기엔 적어도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50억달러라는 숫자의 산출 근거가 불명확하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는 물론 한반도 밖에 배치된 정찰기, 폭격기 등 역외 전략자산 전개비용까지 모두 한국에 부담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구체적인 경비 산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거나 부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 한국은 이미 상당한 방위비를 부담하고 있다. 한국의 올해 분담금 10억달러는 주한미군 주둔비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은 세계 최대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평택 기지) 건설비 107억달러 중 90% 이상을 부담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것”(댄 설리번 공화당 상원의원)이란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3위의 미국 무기 수입국(2008~2017년 총액)이다.

미군이 용병은 아니지 않나

셋째, 주한미군은 한국에만 이익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이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사드 보복’에 나선 이유를 미국은 생각해봐야 한다. 넷째, 동맹을 돈으로만 따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이다. 고립주의로 고립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 정부도 방위비 분담금을 절대 못 올린다는 입장은 아니다. 역외자산 전개비용 일부를 한국이 더 부담하는 건 협상의 여지가 있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벌어지면 한국 밖에 배치된 전략자산 동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커진 만큼 한국도 책임을 더 지는 대신 아시아 안보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미래지향적 한·미 동맹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전제는 동맹에 대한 존중이다. 미군이 한국으로부터 돈 받고 싸우는 용병은 아니지 않은가.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