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속속 타결되는 FTA…'농업·일본' 문제없나

입력 2019-11-12 10:36
수정 2019-11-12 10:41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어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등이 태국 방콕에서 열린 각국 정상 회의에서 ‘타결’한 RCEP(알셉·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 추가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죠.

RCEP은 우리나라가 처음 시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아세안 10개국은 물론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참여하고 있지요. 최종 타결되면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인 우리나라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 본부장이 기자 브리핑에 나선 배경엔 RCEP 결과를 놓고 일었던 논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중국 일본 호주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홍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요. RCEP 협정문 작성을 종결지은 걸 놓고 우리 정부가 ‘타결’이란 표현을 쓴 게 맞지 않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협정 완성을 위해선 참여국 별로 법적 검토를 거친 후 문안을 수정하고 양자 협상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협상 완료’를 뜻하는 타결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죠. 또 인구 13억 명의 인도는 이번 RCEP 협정문 조율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해외에선 “RCEP 연내 타결이 무산됐다”는 쪽에 방점을 찍어 보도했습니다. 반면 국내 대다수 언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RCEP 협정문이 7년 만에 타결됐다”고 일제히 보도했지요.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7년을 끌어온 RCEP의 중요한 합의가 이뤄졌고 막판까지 변수가 많았지만 결국 각국 정상이 100% 합의를 도출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외에선 쓰지 않는 ‘협정문 타결’이란 표현에 대해선 “16개국 간 협상이 일반적이지 않고, 한국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절차였다. RCEP의 9부 능선을 넘은 상황에서 협정문 완성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지요.

어찌 됐든 수 년을 끌어온 RCEP 협상이 중요한 진전을 보인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 미국 칠레 싱가포르 터키 등 16개 경제체제(아세안 등 경제협력체 및 국가)와 자유무역을 완성(FTA 발효)했고, 러시아 에콰도르 필리핀 등과도 협상 중인 ‘FTA 선도국’입니다. RCEP은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세계 최대인 만큼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로선 반도체 자동차 선박 통신기기 등 주력 수출품의 판매를 확대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RCEP 참여국 중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와는 이미 FTA를 맺고 있지만 다자간 협정인 RCEP을 통해 국가마다 제각각인 수출 규범을 통일시키게 된 점도 적지 않은 수확입니다.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농업 부문의 추가 개방과 일본에의 시장 개방입니다.

우선 농업입니다. RCEP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다른 FTA보다는 시장 개방 수위가 낮긴 해도 채소류, 과실류 등 농업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이 양보해야 합니다.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 강국들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RCEP 회원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이 수출 대비 두 배 이상 많습니다. 농산물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국내 농업계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지요.

앞서 정부가 또 다른 농업 강국인 인도네시아와의 FTA를 타결한 데 이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더 이상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선언한 터여서 농업계 불만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연내 필리핀 및 말레이시아와의 FTA도 마무리지을 계획이지요. 농민단체들은 “전국 농민들이 총궐기에 나서 성난 농심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RCEP 협상 과정에서 농업은 매우 민감한 주제였다”며 “쌀의 경우 아예 협상 품목 대상에도 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걱정은 ‘일본’입니다. RCEP이 최종 타결되면, 사실상의 한·일 FTA가 완성되는 겁니다. 작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241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봤습니다. RCEP은 대일(對日) 무역 역조를 더 키울 겁니다. 한일 간 상품양허 협상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자동차 의류 전자 소재 식품 등 여러 부문에서 상당한 수준의 관세 인하가 불가피하지요. 이는 “CPTPP의 경우 한일 FTA 효과를 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과도 배치됩니다. 유 본부장은 이에 대해 “RCEP이 한일 FTA 효과를 내는 건 맞지만 시장 개방률이 98% 이상에 달하는 CPTPP보다는 개방 수위가 낮다”고 해명했습니다.

RCEP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작지 않을 겁니다. 국내외 다양한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최종 타결에 이를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