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매운 맛 전쟁'…왜 불경기에는 혀의 고통에 열광할까

입력 2019-11-12 09:37
수정 2019-11-12 10:14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신세계푸드 '대박라면 고스트 페퍼 스파이시 치킨'. 한 입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한 매운맛 라면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누적 판매량 18억 개로 출시 7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삼양식품의 효자상품이다.

'대박라면 고스트 페퍼 스파이시 치킨'은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 중 하나인 고스트 페퍼를 첨가해 스코빌 척도(매운맛지수)가 무려 1만 2000SHU에 달한다.



강력한 매운맛으로 말레이시아를 넘어 동남아 시장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매운 맛에 열광하는 것일까.

미국 주간지 '타임'은 사람들이 매운 맛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극한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폴 로잔 교수는 "사람들은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매운 음식에 끌린다"고 설명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나오는 건 눈물, 콧물뿐이 아니다. 위장도 액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몸에 침입한 매운 맛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켄터키 대학교 의대 이비인후과 교수인 브렛 코머는 이에 대해 "세차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오물을 제거하기 위해 차에 물을 뿌리듯, 우리 몸이 매운 양념을 씻어내기 위해 수도꼭지를 여는 셈이다.

매운 맛을 내는 것은 캡사이신 성분이다. 캡사이신을 섭취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피부가 붉어지며 체온이 올라간다. 그런 현상은 피부에 닿았을 때도 마찬가지. 칼리지 런던 대학교 신경 약리학 교수 안소니 디킨슨에 따르면, 그래서 관절염이나 근육통에 바르는 크림에 캡사이신을 넣는 경우가 존재한다. 일단 캡사이신으로 화하게 자극을 받고 나면 고통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다. 따라서 환부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

그밖에 캡사이신은 심장과 대사 기능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2017년의 연구에 따르면, 비만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중국의 연구진은 평소 캡사이신이 포함된 식사를 한 이들의 경우, 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속이 쓰리는 것을 참아가면서까지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은 건강에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유통업계에 매운 맛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 경기 불황과도 연관이 깊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매운 맛은 주기적으로 유행되는 스테디 푸드의 한 종류다.

실제로 불황, 불경기,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는 주기에 맞춰 매운맛 열풍이 분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1997년 IMF 이후 매운 짬뽕과 떡볶이, 닭발이 대유행이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맞춰 가격은 저렴하되, 자극적이고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국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통을 참아가며 매운 맛으로 스트레스를 잠시 날리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것. 매운 음식의 활황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