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홍콩 시위 등 각종 변수로 증시 변동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의 수요가 커졌다. 채권이나 고배당주, 부동산 등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하는 국내 인컴펀드 108개엔 올해 1조4600억여원(에프앤가이드 집계)이 몰렸다. 이 상품은 일정 기간마다 투자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 배당, 임대료 등 현금 흐름을 지속적으로 재투자해 수익률을 높인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가 2014년 5월 국내 시장에서 선보인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펀드(재간접형)’에도 올 들어서만 1500억원가량이 유입되면서 순자산이 연초(362억원) 대비 네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 펀드는 세계 주식, 채권,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인프라, 뱅크론, 실물자산 등에 투자해 연평균 5%가량의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연초 이후 지금까지 9.9%의 수익률을 올리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글로벌 모펀드를 운용 중인 조지 에프스타토폴로스 피델리티 포트폴리오매니저(사진)는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각국의 금리 인하로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라며 “유럽 금융주와 아시아 신흥국 채권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펀드 성과가 좋았던 비결은 무엇인가.
“올 들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잇달아 낮추면서 달러 유동성이 증가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배당주 투자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고배당주가 아마존 구글 등 기술주처럼 전체 시장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배당 수익에다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이 더해지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작년 하반기 과도한 낙폭을 보이던 아시아 하이일드 채권과 신흥국 채권도 올 들어 강한 반등세를 나타내면서 펀드 성과 개선에 기여했다.”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상승장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Fed의 금리 인하로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는 등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고 있지만 실물경기는 가라앉고 있다. 이 때문에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이 같은 고평가가 어떻게 해소될 것인지, 각국 중앙은행이 이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펀더멘털(기초체력) 변화 없이 미국 증시가 지금처럼 상승한다면 조정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투자 기회도 생길 전망이다.”
▷위험자산 선호가 살아나면서 신흥국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투자 유망 지역은.
“유럽 금융주의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저점에 도달해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금처럼 글로벌 금리가 오르면 주요 은행들 실적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주는 리플레이션(완만한 물가 상승)을 헤지(위험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또 고평가 구간에 진입한 선진국보다 신흥국, 그중에서도 아시아 시장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미·중 무역분쟁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주요 국가의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거나 적자폭이 줄고 있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정부 재정정책도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는 아시아 종목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신흥국 채권은 변동성이 높은 편인데 리스크(위험)에 어떻게 대비하나.
“최근 현지 통화 표시 신흥국 채권 비중을 확대한 게 사실이다. 여전히 표면금리가 연 5%를 넘는 등 가격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물론 환율 변동 리스크가 높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다.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일본 엔화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한국 증시는 올해 주요국 대비 크게 부진했다.
“한국 경제는 올해 미·중 무역분쟁 등에 따른 수출과 생산 둔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 무역협상이 진전되면서 반도체 수출이 반등하는 등 수혜가 기대된다.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도입과 PC 교체 수요, 클라우드 등 신산업 성장 등에 힘입어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정부도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국 증시는 내년 다른 아시아 시장 대비 초과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