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513조5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할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가동하며 ‘예산 전쟁’에 돌입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년과 미래세대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 예산안’”이라며 14조5000억원을 삭감해 500조원 이하로 막겠다는 목표까지 내놨다. 이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일자리 예산을 무조건 삭감하겠다는 한국당이 서민 등을 휘게 하는 진짜 ‘등골 브레이커 정당’”이라고 맞받았다. 얼핏 보면 야당은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깐깐하게 심사하고, 여당은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런 기대는 접는 게 나을 듯싶다. 예산심사 시작도 전에 여야가 한통속으로 ‘끼워넣기’에 혈안이어서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된 8개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보면 7개 상임위에서 정부안보다 지출요구액을 총 8조2858억원 더 늘렸다. 내역도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선심쓰기와 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 위주다. 나머지 9개 상임위의 요구액이 더해지면 10조원을 훌쩍 넘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초(超)비만 예산’ 편성의 문제점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여기에 지역구 사업까지 얹겠다니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지금까지 모습만으로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 예산심사 과정에서 어떤 행태를 보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졸속 심사하고, 민원성 ‘쪽지예산’ ‘카톡예산’이 대거 끼어들 게 뻔하다.
내달 2일까지 짧은 심사기간은 정부 예산안의 문제점을 가려내기에도 바쁘다. 일례로 내년 현금지원 예산이 6조원이나 늘어난 54조원에 이른다. 한 번 뿌리면 사라지는 현금 살포는 소모적이고 휘발성이 강해 경계하지 않으면 남미국가들처럼 중독성까지 띠게 마련이다. 국회의원은 정부의 밑 빠진 독과 같은 예산낭비와 비효율을 감시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자리다. 재정규율이 무너지고, 빚 내서 예산을 짜는 것에 제동을 걸지는 못할망정, 국회가 한술 더 떠선 정말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