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기본법 제81조13(비밀유지조항)은 국세의 부과·징수 업무상 취득한 과세자료의 목적 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헌법 정신인 국민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며,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과세정보에 대해선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국들도 엄격한 비밀주의를 취한다. 예외는 있다. 국가기관의 조세쟁송, 국가통계 작성, 국정조사 목적 등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정보 공유가 허용된다.
그런데 충분한 논의도 없이 이 예외적 정보 제공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안과 의원안을 합해 4개의 법안이 제출됐다. 정부안 등 3건은 국세기본법 개정안, 의원안 1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정부안은 최악이다.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포함한 국가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조세 및 과징금의 부과·징수 등을 목적으로 과세정보를 요구하면 국세청은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과징금 부과를 위해 과세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엄격한 과세정보 통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과징금은 183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도 작년 한 해 동안 6개 법률을 근거로 총 181건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이와 관련된 사업자수는 588개에 달했다. 2017년 지자체 과징금 부과건수는 총 7만1433건에 이른다.
의원안은 공정거래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세금을 부당하게 적게 내기 위한 기업들의 행위나 회계처리에 대해 세무당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또는 특수관계자 이익 증여의제(세법상 증여로 간주하는 것) 규정 등에 따라 과세된 경우와 불공정거래행위금지 또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 이익제공 등 금지 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경우 국세청이 과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위 법안의 내용은 사생활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들이다. 단순한 납세정보가 아닌, 상당량의 기밀정보를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취득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재무구조, 자본거래, 주식취득가액, 지분비율, 투자내역, 채무보증액과 같은 기본정보를 포함하고 자금흐름, 거래 상대방, 제조원가, 연구개발, 인건비, 매출 심지어는 세무조사 결과까지 온갖 영업상 비밀자료가 포함될 수 있다.
개인의 경우도 소득, 보험, 금융 및 재산정보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유출된다. 빅데이터 3법에서 말하는 ‘개인이 특정되지 않은 익명정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익명처리된 단순 공공정보나 행정정보는 4차 산업혁명의 원유(原油)나 같다. 공개되고 활용돼야 한다. 그러나 실명 과세정보 공유는 개인과 기업을 발가벗긴다.
이미 정부 각 부처는 현장조사, 별건조사, 임의사찰 및 각종 공시요구로 충분한 정보, 과도한 조사 권한과 수단, 조사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검찰 고발을 통한 기소, 영장 발부와 압수·수색도 가능하다. 따라서 국세청으로부터 과세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긴급성·필요성은 행정의 편의 외엔 크지 않다. 반면, 납세자의 납세정보가 악용될 경우 그 피해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기업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경영활동상의 제약에 부딪힐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 과세자료는 국민이 납세의무 이행을 위해 ‘자진 신고’한 자료다. 이를 신고목적 외의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국세행정기관과 납세자 간 신뢰를 크게 훼손한다. 과세정보에 대한 비밀 유지가 보장되지 않으면 자발적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세무행정의 기반이 무너진다.
행정기관이 검찰과 법원의 통제 없이, 정당한 영장발부·압수·수색 없이 개인과 기업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반(反)헌법적이고 반문명적인 국세기본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 시민 감시체계 구축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