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 근처에 작은 박물관 ‘트레넨 팔라스트(눈물의 궁전)’가 있다. 분단 시절 동베를린에 속했던 이 건물은 옛 동·서독 주민이 상대 지역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때 거치는 검문소였다. 짧은 만남 후 긴 눈물을 흘렸던 이산가족들은 이곳에서 통일을 꿈꾸며 서로를 위로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30년이 됐지만, 아직도 동·서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다. ‘베시(wessi)’와 ‘오시(ossi)’라는 신조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독일어로 서쪽과 동쪽을 뜻하는 베스트(west)와 오스트(ost)에서 유래한 이 말은 ‘거들먹거리는 서독놈’과 ‘게으르고 멍청한 동독놈’을 빗댄 표현이다.
서로를 비하하는 심리적 배경에는 경제력 차이가 깔려 있다. 올 8월 기준 독일의 전체 실업률은 3.1%이지만 옛 동독 지역 실업률은 6%에 달한다. 동독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서독의 84%에 불과하다. 독일 500대 기업의 93%인 464곳이 서독에 본사를 두고 있다. 우량 기업 상위 30개도 서독에 몰려 있다.
이런 불균형은 지난해까지 2조유로(약 2600조원)의 통일비용을 쏟아부었는데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독일 정부는 1991년부터 일정 소득 이상 서독 주민과 기업의 소득세·법인세에 7.5%를 추가 과세해 옛 동독의 인프라·생활개선에 썼다. 서독 주민들은 “내 세금으로 동독인들을 먹여 살리고 서독은 역차별한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도 동독인들의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독일 정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독지역 주민의 57%가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고 답했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옛 동·서독 지역 간 격차 해소에 반세기가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45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도 ‘미완의 통일’에 시달리는 독일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등 외교 전문가들은 “분단 시기 서독의 1인 국내총생산(GDP)은 동독의 4배였지만 지금 남북한은 30배 차이”라며 “간극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동독은 서독 TV를 시청할 수 있었고, 편지와 소포 왕래가 가능했다. 그러나 남북한은 격렬한 전쟁을 겪었고 분단 기간도 70년이 넘었다. 독일보다 더 깊은 고민과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