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건수가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할 만큼 급속히 늘고 있다. 정부가 의학적 필요와 상관없이 이들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한 결과다.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초음파검사 건강보험 청구 건수는 2017년 35만4071건에서 지난해 210만404건, 올해는 8월 말까지 276만5851건으로 늘었다.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이 발표된 지 2년 만에 여덟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 청구액은 233억원에서 약 열 배인 2306억원으로 솟구쳤다. MRI 청구 건수는 2년 새 80만9865건에서 175만1294건으로, 청구액은 2242억원에서 4773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초음파·MRI 청구액 급증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17년 7077억원에서 지난해 -177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올해는 3조원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케어에 따라 초음파·MRI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지난해 4월 상복부 초음파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2021년까지 모든 초음파·MRI 검사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내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가벼운 증상에도 초음파·MRI 진료를 받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며 “과다 이용을 방지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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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확 낮아진 MRI "너도나도 찍자"
암환자도 한 달 반 기다려야
지난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앞에는 환자 40~50명이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이동식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도 각각 대여섯 명에 달했다. 전광판에는 검사실별로 대기시간이 1시간 안팎으로 떴다. 이정용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총무이사는 “환자가 밀려 새벽 1~2시에 MRI를 찍는 병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내후년까지 모든 초음파·MRI 급여화
의료계에 초음파·MRI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인한 부작용이 일고 있다. 환자의 의료비 경감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검사 건수 급증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정작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검사받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불법·편법 검사가 늘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 분야에 2022년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초음파·MRI에 건강보험 적용이 급속히 확대됐다. 지난해 4월 상복부 초음파를 시작으로 같은해 10월 뇌·혈관(뇌·경부)·특수검사 MRI, 올해 2월 하복부·비뇨기 초음파, 5월 두경부 MRI 등에 차례로 적용됐다.
내년에는 척추 MRI와 심장 초음파, 2021년에는 모든 신체 부위의 초음파·MRI가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이 중 대다수 직장인과 학생이 허리·목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척추 MRI가 건강보험 지출을 급증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척추 질환과 관련해 국내 허리디스크 환자만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초음파·MRI는 ‘질환을 의심할 만한 이상 증상이 있는 경우’와 ‘검사상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로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됐다. 문재인 케어 시행 전에는 검사 결과 보험급여 기준에 열거된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됐다.
“병원·환자, 모두 검사 안 할 이유 없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20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초음파·MRI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된 대표적인 항목”이라고 밝혔다. 이 결과 “질환 유무와 무관하게 검사를 원하는 모든 환자가 사실상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병원이나 환자 모두 검사를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급속히 악화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금 추세라면 현 정부 내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17조2000억원, 다음 정부 적자는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4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환자들은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된 초음파와 MRI 검사를 받기 위해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42개 상급종합병원의 올해 1분기 방문 환자 수(내원일수)는 전년 동기 대비 39.13% 증가한 1380만1000일로 집계됐다. 분기 기준 최초로 1000만 일을 넘어섰다.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요양급여비용)도 50.58% 늘어난 3조4333억원으로 3조원을 처음 돌파했다. 이러다 보니 대형병원에서는 환자들의 검사 대기기간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한 암환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8월 말에 암 진단을 받았는데 10월 중순에서야 MRI를 찍었다”고 말했다.
병상 30개 미만의 소규모 의료기관인 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도 MRI 장비를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 MRI 장비가 대당 20억원 안팎의 고가인 데다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의원의 MRI 장비 보유 대수는 지난해 239대에서 올해에는 8월 말까지 257대로 7.5% 늘었다.
의료 현장에서는 초음파 검사와 관련한 불법·편법 건강보험 급여 청구가 만연해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국초음파학회 측은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의사 한 명이 한 달에 300~500건의 초음파 촬영을 하고 보험 급여를 탄 사례도 있다”며 “의료기사에게 전담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고시에서는 의사가 직접 초음파 검사를 하거나 의료기사와 같은 공간에서 검사를 지도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