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30)] 아세안과 더불어 번영하는 동반자 관계를

입력 2019-11-11 17:10
수정 2019-11-12 00:04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해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오는 25~27일 부산에서 열린다.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열렸으니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한 달도 안 돼 한국에서 다시 모이는 셈이다.

아세안은 각종 회의가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상급부터 장관급, 실무자급에 이르기까지 연간 1300차례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따라서 아세안 정상들을 아세안 지역 밖에서 모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2009년 제주, 2014년 부산에 이어 한국에서는 세 번째다. 아세안의 10개 대화 파트너 중 자국에서 특별정상회의를 세 차례 개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특별한 정상회의다. 호주 미국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이 1970년대에 아세안과 관계를 수립한 데 비해 한국은 1989년에야 비로소 아세안과 대화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도 아세안이 한국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신남방정책 추진 의지와 진정성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신남방정책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신남방정책은 한반도 주변 4강 중심의 외교를 넘어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외교 및 경제 다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대(對)아세안 정책은 독립적인 외교정책으로 자리잡지 못한 탓에 정부가 바뀐다거나 북한 문제 또는 강대국 이슈가 불거지면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2017년 11월 필리핀 방문 때 제시한 신남방정책의 비전과 전략은 아세안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실현해나간다는 한·아세안 관계의 지향점도 분명히 했다.

신남방정책은 그간 많은 진전을 이뤘다.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와 외교부의 아세안 협력 전담 ‘아세안국’ 설치, 주아세안대표부의 격상 등 신남방정책 추진 체계를 갖췄다. 특히 신남방정책특위는 16개의 추진 과제와 57개의 중점 사업을 설정해 사업을 총괄·조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는 등 정상 외교를 통해 신남방정책을 직접 추동함으로써 아세안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얻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지난 30년간의 한·아세안 관계를 평가하고 새로운 30년의 미래 파트너십을 제시함으로써 신남방정책의 모멘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와 관련해 문화장관회의 등 5개 분야에서 장관급 회의가 열리고 아세안 정상들이 특별연설을 하는 ‘CEO 서밋’, 산업기술의 미래비전을 제시할 ‘혁신성장 쇼케이스’, ‘스타트업 엑스포’ 등 40여 개의 행사가 전국적으로 개최된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려 성급하게 몰아붙이는 태도나 보여주기식 행사는 지양해야 한다. 이젠 한·아세안 간 교역·투자 및 인적 교류 질적 심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첫째, 미·중 갈등, 자국중심주의 등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아세안 협력관계의 명확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 신남방정책이 일관성과 지속가능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서로 ‘윈윈’하는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해 교역에서 한국은 406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이뤘고, 올해도 10월 현재 무역흑자가 30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교역 불균형은 지속가능한 협력관계 발전에 장애 요소다.

셋째, 지속가능한 협력이 이뤄지려면 더불어 번영하는 협력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 공적개발원조(ODA) 등 지원사업 확대와 관련해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소리냐’는 인식이 아직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상대방도 함께 발전해야 협력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또 분야별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제시하고 철저하게 실행해야 한다.

교역·투자의 질적 심화 절실

넷째,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가 진정한 파트너십의 기본이다.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믿음이 생기려면 쌍방향의 인적 교류와 문화 이해가 중요하다. 한류를 확산시키는 것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아세안과 한국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적 자존을 지키며 정치·경제 발전을 추구해온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아세안은 지역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전략적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평화를 향한 동행, 모두를 위한 번영’이란 슬로건하에 열리는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한국 국민과 아세안의 이해와 신뢰를 얻어 신남방정책이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