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조장하는 대토보상③] 부동산 개발해 수억원 '확정수익' 약속…처벌은 아예 없다

입력 2019-11-22 07:15
수정 2019-11-22 07:33
3기 신도시 개발과 광역교통망 구축으로 수도권에 수십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릴 전망이다. 이러한 돈들이 부동산으로 다시 흘러들어가게 되면 유동성이 넘치고 집값을 올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이를 막겠다고 마련한 정책이 '대토보상'이다. 하지만 대토보상은 규제가 거의 없다보니 토지주들의 고수익 사업으로 자리 잡았고, 편법의 장(場)이 됐다. 정부가 뒤늦게 법을 정비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장은 일부 업체들의 부추김 속에 투기판처럼 변질됐다. '한경닷컴'은 합법과 불법 사이의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대토보상의 현실을 3회에 거쳐 짚어보고자 한다. <<strong>편집자주>

"그렇게 좋은 거면 당신이나 투자하지. 나한테 뭐하러 알려줘?" 흔히 사기꾼의 말을 되받아치는 단골멘트 중 하나다. 확실하게 돈 버는 투자처의 정보를 쉽게 알 수 없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더군다나 '수익률 OO% 보장', '확실하고 안전한 투자처'라는 문구는 신뢰도가 없다. 실제 거의 없을 뿐더러 이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날리는 경우도 허다해서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어느 시장을 막론하고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채권은 안전하다'는 맹신에 믿고 투자했지만, 독일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투자자들은 원금회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실이 확정됐다. 짧은 만기에 연 5% 수익을 꼬박꼬박 줬던 사모펀드. 너도나도 가입해 믿고 맡겼지만, 원금을 날린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도 있다.

대토보상은 개발업체들이 대출을 적극적으로 떠안겠다고 나서는, 이른바 대토보상채권의 신탁을 맡아주면 '확정 수익'이 당연시 되고 있다. 토지주들은 '누가 얼마나 더 주느냐'를 보고 업체를 선택하고 있다. 오랫동안 개발이 불가능했던 개발제한구역의 경우 토지주들이 고령인 경우가 많다. 농업으로 생활했던 토지주들에게 대토보상은 어렵게만 느껴지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얼마 더 드리겠으니 위임장 쓰시면 됩니다'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손실 없었던 대토보상, 토지주들 고수익으로 유혹

더군다나 국내에서 지금까지 이뤄진 대토보상에서 손실을 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업이 잘못된 선례가 없다보니 토지주들도 '안전하겠지'하는 마음에 수익을 더 보장해주는 업체에게 위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실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대토보상이 적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전국 공공택지의 대토보상 비율은 2008~2014년에는 1~3% 정도였다. 때문에 대토보상을 통해 분양이 이뤄지고 건물이 준공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사례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수도권 땅값이 상승하고 현금 보상가는 시세에 못 미치면서 대토보상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후발업체들도 대토보상에 뛰어들면서 '확정수익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주택건설사업자 등록, 부동산개발업등록, 임대관리 등 기본적인 면허도 없는 상태다. 급기야 2015년에는 대토보상 비율이 15%로 급등하고, 대토보상 신청도 급증하면서 정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LH 관계자는 "대토보상으로 손실을 본 경우는 다행히도 없었다"면서도 "대출을 떠안은 개발업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지주들이 대토보상의 사업내용을 이해하고 자체적인 위원회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LH의 입장이다. 토지주들이 직접 나서면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개발업체들은 수수료를 주고 업무위탁을 맡기는 등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이다.

그러면서 권유하고 있는 형태가 대토보상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다. 대토보상리츠는 토지주들이 자신의 대토보상권을 주고 지분을 받는 형태다. 일반적인 리츠가 주식을 현금으로 사는 것과는 다르다. 대토보상리츠는 자산관리회사(AMC)를 설립해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이에 따른 개발 이익을 투자자인 토지주에게 돌려주게 된다. LH는 여기에서 AMC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토지주들 중심으로 대토보상받는 사례 늘어

실제 남양주 진접2지구(약 129만2388㎡)에서는 대토보상리츠 협의회가 만들어지고 토지주를 모집하고 있다. 최광대 진접2지구 대토보상 위원장은 "대토보상을 앞두고 소위 개발업체들을 10군데 가량 만나보고 설명을 들어봤다"며 "뚜렷한 근거없이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얘기만 늘어놓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땅값도 변하고 대토보상을 어떤 부지로 받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업체들 모두 얼마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하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최 위원장은 LH를 자산관리회사로 선정하고 업무대행을 도와줄 업체도 어느정도 합의를 마친 상태다. LH에 따르면 남양주 진접2지구를 비롯해 성남 복정, 이천 중리 등지에서의 대토보상협의체들이 LH에 AMC를 맡아달라는 의향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이는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의 대토보상은 '원금 보장'과 '확정 수익'이라는 개발업체들의 미끼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LH를 비롯해 대토보상에 이제 뛰어든 신생업체들은 처벌이 없다보니 이러한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유사수신행위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금보장과 확정수익 보장하는 조건으로 대토보상 개발사업 참여자(투자자)를 모집하는 게 유사수신행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사수신행위는 은행법, 저축은행법 등에 의한 인가나 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 · 신고 등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수입하는 행위도 이에 해당된다.

처벌법률은 추진되고 있다.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상정했다. 3기 신도시 토지 보상으로 수십조가 풀리 전에 개정안은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토보상권에 기반을 두고 '현금으로 전환해 보상받을 권리'도 전매제한 대상임을 명시한다. 대토보상권에 기반한 현금으로 보상받을 권리를 양도하거나 신탁하는 것은 사실상 대토보상권의 권리 변동을 수반하는 행위이기에 이 또한 전매제한 대상임을 명시한다. 대토보상권과 그에 기반한 현금으로 보상받을 권리의 전매제한 위반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을 신설한다.

◆3기 신도시 토지보상 앞두고, 처벌 규정 포함된 개정안 추진

일각에서는 이러한 처벌규정이 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토보상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수십억 내지는 수백억에 달하는데 1억원 이하의 벌금을 겁낼 사람이 누가 있겠냐라는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아파트의 경우 현행법상 불법전매에 가담한 불법 매도-매수자, 공인중개사 등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해당 분양권의 당첨은 취소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대토보상의 벌금범위는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부 토지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대토보상채권의 신탁전면금지를 법개정을 하는 건 사실상 대토보상 규모를 축소시키는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관련법이 개정되면 대토보상채권의 신탁을 통한 대토개발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성남복정과 성남금토(제3판교), 하남교산지구(3기 신도시) 일부 지주들은 이 같은 개정안에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일부 토지주들은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부동산투자회사에 대한 현물출자와 신탁업자에 대한 신탁을 금지한다. 대토보상채권의 신탁전면 금지가 포함됐다. 토지주들은 이에 대해 "신탁전면금지는 신탁제도의 무용론과 지주의 사적 재산권의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는 토지보상의 현금보상을 부추기게 되고, 유동자금이 주변토지 및 부동산 가격상승 등에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탁을 통한 대토보상채권의 대출이 필요한 것이지 전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토보상채권의 신탁은 지주들의 기존대출금 상환 및 양도세 납부를 위한 재원마련을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업무대행 정도로 대토보상을 맡고 있는 업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대토개발 관계자는 "정부는 대토보상채권 불법전매 방지를 이유로 문제되는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대토보상채권의 신탁까지 전면 금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라며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LH에서 추진중인 방향으로 대토보상채권 신탁을 통한 금융이 막힌다면 지주공동사업방식의 대토는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 토지보상 중 대토신청 규모는 전체 10%수준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덧붙였다.

그는 "불법전매를 막기위해 기존에 잘 진행되어온 지주가 직접 대토사업을 하는 신탁까지 전면 금지하는 건 너무 무리한 압박이다"라며 "가뜩이나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토지보상금이 적고, 생활터전과 고향이 사라진다는 상실감에 빠져 있는 토지주를 두번 죽이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토보상이 변질된 까닭은 일부 개발업체의 횡포 때문이라며 자격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토지주들은 부동산 개발 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토지주들을 대신해 대토용지를 개발할 수 있는 업무대행사 즉 개발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대토보상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개발업체 대부분이 부동산개발업 무등록자이거나 매출액도 거의 없는 신규 설립된 법인이거나 자본금이 1억원도 안 되는 법인이라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대토보상을 체계적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와 토지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조합설립와 분양 절차와 유사한 형태가 제시되고 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조합에서 총회 의결로 시공사 선정하는 것처럼, 주민대책위원회 주도로 대토보상 참여자를 대토용지별로 모집하자는 것이다. 개발업체는 부동산개발업 및 종합건설면허 등을 보유하고 자본력이 있는 회사에게 대토보상사업 제안서를 접수한 후,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을 분양대행을 할 수 있는 자격요건에 종합건설업면허를 보유하도록 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와 같이 공공택지지구 내에 대토보상 및 대토보상 개발사업에 업무대행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개발업체들도 자격조건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성남의 한 토지주는 "재개발처럼 집이 오래되서 내가 새 집을 짓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택지지구 발표하면서 시작된 사업이 아니냐"면서 "정권이 바뀌고 토지계획이 수도 없이 변경되면서 주민대책위원회도 분파가 갈리는 등 몇 년간 고통을 받았고, 이제는 못믿을 업체들까지 시도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서 괴로울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끝)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