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기업 디지털 혁신 본질은 '기술 아닌 변화'

입력 2019-11-10 18:02
수정 2019-11-11 01:22
전통기업이 본격적으로 디지털 혁신 성과를 창출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동안 디지털 혁신은 아마존, 우버 등 신기술 기반 기업의 전유물로 간주됐다. 이들은 신기술과 플랫폼 사업모델로 무장하고 유통, 모빌리티 등 기존 산업을 하나씩 파괴해갔다. 다른 산업도 이들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통기업들은 신기술에 기반한 기업의 전략을 빠르게 흡수했다. 기존 고객 관계와 물리적 거점, 생산·운영 역량 등 고유의 장점을 지렛대 삼아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월마트는 제트닷컴 같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해 전자상거래 역량을 빠르게 보강했다. 여기에 자사의 촘촘한 오프라인 점포망의 장점을 결합한 옴니채널 서비스 ‘클릭&콜렉트’를 선보였다. 소비자는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하고 가까운 월마트 매장에서 찾아간다. 배송으로 받는 것에 비해 상품 신선도가 유지된다. 이를 바탕으로 월마트는 아마존의 기세를 누르고 연 35% 이상의 e커머스 매출 성장을 실현하고 있다.

폭스바겐 상용차 부문은 클라우드 기반의 운송 솔루션 자회사 리오를 설립했다. 물류업체와 운전기사에게 디지털 운송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여러 제조사의 트럭과 버스를 운용하는 물류업체의 수요를 겨냥해 다른 제조사의 트럭과 버스에도 리오 박스만 부착하면 통합 운송관리를 할 수 있게 했다. 리오 플랫폼의 앱스토어를 통해서는 다양한 운송 관련 앱(응용프로그램)을 공급한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지난해 기준 리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사가 유럽에서만 2600개가 넘는다.

해외는 이런데 한국 기업의 디지털 혁신 성과는 어떨까. AT커니가 최근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역량 진단에 따르면 국내 기업은 글로벌 선도기업 대비 평균 50점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운영효율 개선에 치우쳐 있다. 또 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 기술 인프라 및 인적 역량 부족으로 그나마 개념증명 단계에 머물러 있어 성과 창출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디지털 혁신 성과 창출은 결국 실행과 확산의 성패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 혁신의 비전과 구체적인 추진전략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 디지털 혁신 추진 전담조직 및 전사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전문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 잣대로 디지털 혁신 과제를 추진하느냐 마느냐를 의사결정하지 않도록 별도 평가 기준과 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다. 디지털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변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