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소기업 氣살리기'

입력 2019-11-08 17:31
수정 2019-11-09 00:07
중소기업 위상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숫자가 있다. 국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9988’이다. ‘9988’은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15년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역대 정부치고 ‘중소기업 육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자마자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켰다. 중소기업을 ‘공정경제’로 보호하고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키워내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중소기업 상황은 악화일로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지나치게 엄격한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 탓에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지방 주요 공단은 물론 반월·시화 등 수도권에서도 공장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탈(脫)한국’도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중소기업 해외 직접투자가 100억1500만달러(약 11조5870억원)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2014년(32억달러)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기업 승계를 ‘기술·고용의 계승’이 아니라 ‘부(富)의 대물림’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멀쩡한 기업들이 ‘가업(家業) 포기’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 상속세율은 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의 두 배가 넘는다. 제조업 강국 일본과 독일의 자랑인 ‘100년 장수기업’은 꿈도 꾸기 어렵다.

연말을 앞두고 중소기업을 위한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중소기업진흥회 주관으로 내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제3회 중소기업인 기(氣)살리기 마라톤 대회’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기술혁신 중소기업인의 밤’ ‘벤처 1000억 기업 기념식’ 등이 예정돼 있다. 정부·여당 인사의 의례적인 격려 한마디보다는 근로시간 단축 재검토 등 어깨가 축 처진 중소기업인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시급한 시점이다.

‘9988’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기업인들이 열정을 갖고 ‘99세까지 팔팔하게(9988)’ 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짜 ‘친(親)중소기업 정부’일 것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