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또다시 올 풍성한 우리의 무대를 위해

입력 2019-11-07 17:16
수정 2019-11-08 00:16
다양한 공연 무대예술이 그렇듯, 오페라 역시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많은 예산과 시간 그리고 무대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의 호흡과 땀방울이 필요하다.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1년 전부터 연출가, 지휘자, 주·조역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를 섭외한다. 시각적 표현을 위해 무대 세트, 조명, 의상, 영상, 분장, 소품 파트 디자이너들이 함께 작품 의도를 이해하면서 각 파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연출가는 이들의 그림을 하나로 모아 작품 진행을 생각하며 배우들의 동선을 만든다.

공연 시작 수주 전부터 가수들과 지휘자, 음악코치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정확한 템포와 리듬을 하나로 조율하는 음악연습을 한다. 서로 앙상블을 이룰 수 있도록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지휘자는 자신의 음악적 의도를 알려주거나 가수 간 이상적인 화음을 위해 지시를 한다.

가끔은 음악가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자신의 음악을 추구하는 독주자들이 모인 상황인지라, 서로 희생하는 시간이 없이는 온전한 작품을 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음악은 희생을 통해 구현된다”고 얘기한 것과 맥락이 닿는다.

이렇게 준비된 음악을 가지고 가수들은 연출가를 만난다. 연출가는 동선과 연기를 지시하고, 상대 배우와 약속을 통해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한편, 준비하고 있는 무대와 의상, 조명, 음향, 대소 도구가 이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꼼꼼히 살피고 의견을 제시한다. 제작파트의 진행 상황도 점검해 무대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음악을 맞추고 나면 그제야 실제 무대 연습을 시작한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면 가수들의 긴장은 뜨거운 에너지로 바뀐다.

무대 밖의 손길도 바쁘다. 매표, 판촉, 공연을 진행하는 매니저와 객석을 정리하는 어셔들, 행정인력들도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예술가만큼이나 전력을 기울인다. 이런 노력들이 무대 위에 집중돼 막이 오르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객석의 공기를 채운다. 가수들이 그 위에 옷을 입히며 뜨거운 연기를 펼치고, 무대 뒤에서는 무대감독, 조연출, 무대 전환수들, 조명과 소품, 의상, 분장 인력 수십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안무하듯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관객의 호응과 갈채로 공연은 더욱 데워지고 커튼콜로 마무리된다.

그러고 나면 감독의 지휘하에 오랜 시간 세웠던 무대는 일사천리로 철거된다. 극장 상부의 조명과 백스테이지의 많은 소품과 가구도 정리돼 빠져나간다. 어느새 극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빈 무대만 덩그러니 남는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사람들의 긴장과 웃음, 질책과 격려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빈 무대는 어색한 공기만 품고 있는 것 같다. 겨울부터 힘들게 땅속의 다양한 양분을 끌어올려 봄 여름에 초록으로 싱그러운 빛을 발한 뒤, 단풍으로 절정의 화려함을 뽐내다가 언제 그런 계절이 있었냐는 듯한 쓸쓸한 늦가을과 닮았다.

삶의 무대가 반복되는 것처럼 그 무대도 다시 채워질 것이다. 가을의 절정을 누리고 나면 단풍이 지고 빈 가지만 남는다. 하지만 나무들이 다시 풍성해질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비워야 할 시기엔 어색해하지 말아야겠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또다시 올 풍성한 우리의 무대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