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갑지 않고 염증까지 잡았다…6兆 안구건조증 치료제 시장 정조준"

입력 2019-11-07 15:23
수정 2019-11-07 15:24

“안과 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 되겠다.”

양재욱 아이바이오코리아 대표(51)가 밝힌 포부다. 부산에 기반을 둔 바이오벤처 아이바이오코리아는 안과 질환 치료제의 약효 검증과 분석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JW중외제약 한림제약 등 제약사들도 안과 의약품의 약효 검증을 이곳에 맡길 정도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안과 교수인 양 대표가 20년 넘게 안과 분야 임상 경험과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개발 노하우를 쌓아온 덕분이다. 그는 “안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벤처 중에서는 드물게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까지 경험과 노하우를 두루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파일럿 꿈 접고 의사 되다

부산 동래에서 자란 양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파일럿이 꿈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의대 진학을 바랐던 부친의 뜻을 좆아 인제대 의대에 들어갔다. 인제대 의대생으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파이오니아에서 보컬을 맡아 강변가요제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끼가 있는 젊은이였다.

양 대표가 전공을 안과로 선택한 것은 연구도 하면서 수술 기회까지 있는 분야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내과 질환, 전신질환 등이 눈과 관련성이 높아 수술 기회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안과 분야의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안과는 치료제와 의료기기 시장이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전기 사용이 늘어난 데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안질환 환자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그는 “전기 때문에 밤에도 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눈이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 안질환이 발생한다”며 “노령 인구가 늘면서 눈의 노화로 인한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특허 기술 아까워 창업 결심

양 대표가 창업의 길로 들어선 데는 보건복지부의 병원특성화 사업에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진행한 이 프로젝트 연구로 국비 50억원 등 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지방대 의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사업자로 선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 대표가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따내자 학교 측이 파격 지원을 했다. 130㎡ 규모의 안과 동물실험실을 마련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내 대학에서 흔치 않은 시설이었다. 그는 “실험 공간이 확보되면서 본격적으로 신약 후보물질 발굴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이후에도 굵직한 국가과제들을 따냈다. 2015년에는 복지부로부터 안과질환 T2B 기반 구축센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국비 75억원 등 110억원의 대형 연구과제였다. 사업기반이 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은 항암, 연세대 세브란스는 심혈관, 인하대병원은 소화기, 가천길병원은 내분비, 한국독성연구소는 호흡기 분야 과제를 수주했다. 지방 대학병원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도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안과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올린 덕분이었다.

양 대표가 지금껏 수주한 국가과제 규모는 300억원에 이른다. 과학자 한 사람이 따낸 국가과제 연구비 규모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그는 “국가과제 등을 수행하면서 쌓은 연구 노하우와 특허 기술을 썩히기가 아쉬워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바이오코리아가 국내외에 등록했거나 출원한 특허 건수는 총 65개다.

해외서도 인정하는 약효 분석 기술

양 대표는 회사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바이오기업 크라우드 브레이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익상편 안약 치료제의 약효 평가를 의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양 대표가 국제학술지 등에 발표한 논문을 보고 수소문 끝에 연락한 것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크라우드 브레이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임상 3상에 아이바이오코리아가 참여하기로 했다. 양 대표는 “약효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동물 모델과 평가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며 “평가 기술과 장비, 정확한 동물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제약사들도 약효 평가를 맡기고 있다”고 했다.

아이바이오코리아는 22종의 동물 모델과 13종의 세포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동물 모델은 실험용 생쥐 등에 특정 질환을 발현시켜 치료제 효능 등을 시험할 때 쓰는 실험 동물이다. 양 대표는 “현재 보유 중인 동물 모델과 세포 모델로 대부분의 안과 질환에 대한 약물 효과를 따져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사는 5㎜밖에 안 되는 임상용 생쥐 눈을 정밀검사할 수 있는 장비 등 다양한 눈 검사 장비도 갖추고 있다. 물고기 모델도 확보했다. 열대어 제브라피시를 활용한다. 그는 “제브라피시는 6일 만에 알을 낳는 데다 눈이 앞으로 톡 튀어나와 있어 안과 약물 효과를 단기간에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동물 모델 등에 힘입어 약효 분석 시간을 크게 줄였다. 그는 “안과 약물 분석에는 대개 3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우리는 13일이면 약효 분석을 끝낼 수 있다”며 “약효 분석에 걸리는 시간이 줄면 그만큼 의약품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바이오코리아가 약효 분석을 대행해준 국내외 제약사는 60여 곳에 이른다. 약효 분석뿐 아니라 의약품 개발 방향까지 컨설팅하고 있다. 양 대표는 “황반변성의 경우 초기와 후기의 기전이 서로 다른데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환자를 모집하는 일이 많다”며 “잘못된 임상 설계를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고 했다.

내년부터 본격 임상

아이바이오코리아가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안구건조증 치료제, 황반변성 치료제, 녹내장 치료제 등 3개다. 안구건조증 치료제 ‘EB-101’은 지난해 9월 국내 임상 1상을 마치고 2상을 준비 중이다. 조만간 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양 대표는 “임상 1상에서 독성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경쟁 약물에 비해 뛰어난 효능도 보였다”고 했다.

시장 규모가 6조원에 이르는 안구건조증 치료제 시장은 미국 엘러간의 ‘레스타시스’, 샤이어의 ‘자이드라’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치료제가 안고 있는 약점을 파고들면 승산이 있다는 게 양 대표의 판단이다. 레스타시스는 염증을 잡아주지만 눈이 따갑다고 호소하는 부작용이 있다. 자이드라는 각막 상피 보호 효과는 좋지만 염증 치료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는 “EB-101은 눈물 분비를 늘려 각막 상피 보호는 물론 항염증 효과가 기존 치료제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임상 2상은 4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3~4개월 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는 국내와 해외에서 임상 3상을 동시에 시작할 예정”이라며 “임상 2상이 종료되면 다국적제약사 등에 기술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반변성 치료제 ‘EB-102’는 비임상을 완료했다. 중국에서 동물실험을 통해 펩타이드 물질의 단점인 염증 부작용이 이 약물에서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양 대표는 “국내에서 1년 정도 영장류 독성실험을 한 뒤 내년 하반기께 국내와 해외에서 임상 1상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EB-102가 아일리스 루센티스 등 기존 황반변성 치료제와 경쟁할 포인트로 가성비를 꼽았다. 항체 치료제인 아일리스와 루센티스는 눈에 맞는 주사제로 환자들의 거부감이 큰 데다 1회 투약 비용이 80만원 안팎으로 비싸다. 반면 EB-102는 안약으로 개발하고 있어 사용이 간편하다. 펩타이드 기반이어서 가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그는 “황반변성은 65세 이상 고령자의 25%가 앓는 질환”이라며 “고령화로 10조원 안팎 규모인 세계 시장이 매년 10~20%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녹내장 치료제 ‘EB-103’도 비임상을 마친 단계다. 하지만 임상 1상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안압을 낮추는 효과가 뛰어난 기존 녹내장 치료제 시장을 파고들기가 아직은 수월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기존 치료제는 안압만 낮춰주지만 EB-103은 시신경을 살리는 효과가 있어 다국적제약사로부터 공동개발 제안을 받았다”면서도 “2022년까지는 시장 추이를 지켜본 뒤 본격적인 개발 시기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동물용 치료제도 개발

아이바이오코리아는 애완동물용 치료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올초 비임상대행업체인 KPC연구소와 손잡고 설립한 인스웰을 통해 애완견들이 많이 앓는 안구건조증과 아토피, 신장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했다. 관절염 알레르기 등으로 치료 분야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시약 생산과 완제품 판매 파트너도 확보했다. 양 대표는 “지난 6월 종근당 계열인 경보제약과 공동개발 협약도 맺었다”며 “경보제약이 원료의약품뿐 아니라 시약을 생산하고 판매도 맡는다”고 했다.

동물용 의약품 시장에 뛰어든 것은 수익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다. 사람용 안과 치료제와 달리 동물 의약품은 개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시장 전망도 밝다. 그는 “국내 시장을 우선 공략한 뒤 세계 동물 의약품 주력 시장인 북미와 유럽, 중국을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바이오코리아는 3~4년 뒤 상장에 나설 계획이다. 양 대표는 “EB-101과 EB-102의 임상 3상이 완료되는 시점을 상장 시기로 잡고 있다”며 “2022년 말이나 2023년 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 대표의 경영철학은 나눔이다. 내 몫이 100이라고 할 때 그것을 1000, 2000으로 키우면 자연스럽게 임직원 투자자 등과 몫을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출산한 직원에게 사비로 유모차를 사주는 것도 이런 믿음이 있어서다. 그는 “서로 나누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회사에는 그 갑절의 보상이 돌아온다”며 “임직원에게 해외연수 기회 등 인센티브도 고루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