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러운 광경이 있다. 지팡이를 짚거나 목발을 한 채로, 또는 ‘워커’라 부르는 보행기를 밀면서 번화한 도심 한복판을 다니는 노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곱게 화장을 한 양장 차림 또는 양복 차림에도 거리낌 없이 목발을 짚고 버스나 트램, 전철을 오르내린다.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지팡이나 목발은 노인들이 걸을 때 무릎과 관절을 보호하고, 균형을 잡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예전에는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 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휠체어 같은 장비가 부족해 지팡이나 목발에 의지해 억지로라도 걸어야 했다. 지금은 소아마비가 많이 사라진 대신 선천적인 척추 장애로 다리 근육이 마비됐거나 근육병, 신경병 등으로 마비가 온 사람들에게 지팡이나 목발이 여전히 필요하다.
유럽에서 열리는 의료기기 전시에 가 보면 다양한 의료용 목발과 지팡이 제품을 볼 수 있다. 땅에 닿는 고무 부분이 빨리걷기용, 실내용, 눈길용 등 용도별로 나와 있고 무게와 색상 또한 다양하다. 요즘은 온라인 장터를 통해 누구나 이들 외국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지팡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걷기운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스키를 타는 것처럼 양 손에 스틱을 짚고 걷는 ‘노르딕 워킹’으로 전신운동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노르딕 워킹은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고 상체의 운동효과도 좋아 동호인들이 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실버 스포츠로도 각광받고 있다. 무언가를 짚고 걷는 것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2018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 증가와 더불어 퇴행성관절염 등 보행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무릎 인공관절 시술 건수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병원을 찾은 초기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에게 투약을 하거나 치료적 시술을 하기 전에 관절 보호를 위해 지팡이나 양손에 짚는 목발을 권하면 대부분은 싫다고 한다. ‘나이 든 티가 난다’, ‘물건 들 때 손 사용이 불편해서 싫다’, ‘장애가 심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를 든다. 악화돼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 것보다 간편한 장점이 있고, 북유럽의 노인들은 다 지팡이를 짚고 도심을 잘 다닌다고 설득을 해도 귀담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다. 심지어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남들의 시선이 그만큼 거북하다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청소년 환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지팡이나 목발이 없으면 오래 걷지 못하고 뒤뚱거리게 돼 몸의 변형도 오고 잘 넘어지기도 하는데, 사춘기나 청소년기 환자들은 거의 다 요지부동이다. 걷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지팡이를 짚은 모습을 보는 남들의 시선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지팡이나 목발, 보행기 등은 보행 보조기구라 부른다. 약해진 근력을 보완하고 관절을 보호해주며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줘 넘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혼자 오래 걸을 수 있게 해주는 필수 기구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지팡이 같은 보행 보조기구에 대해 ‘부정적 프레임’이 작동한다. 지팡이 등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과도한 동정심이 거북하며 장애 차별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같은 인식을 걷어내지 않으면 지팡이나 목발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도 여전히 사용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등산할 때 양손에 스틱을 짚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국 어느 산에 가도 양손에 스틱을 짚고 오르는 등산객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지팡이와 같은 보행 보조기구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