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폭탄 할인만이 살길"…일본차, 체면 접고 '불매 돌파'

입력 2019-11-06 09:06
수정 2019-11-06 09:09


판매 절벽에 처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이 폭탄 할인을 내세우고 나섰다. 1500만원까지 마진을 포기하는 할인전을 불사하고 있다. 국내 일본 불매운동의 파고를 넘기 위해선 체면보단 생존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혼다, 닛산, 인피니티, 도요타 등 브랜드에서 제품 마진을 포기한 할인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매운동이 길어지며 생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혼다코리아는 정상가 5490만원인 대형 SUV 파일럿을 500대 한정으로 1500만원 할인한 3990만원에 판매했다. 할인율이 27.3%에 달해 사실상 마진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격 할인에 혼다코리아는 파일럿 665대를 판매하며 완판에 성공했다. 10월 총 판매량은 806대로 9월과 비교하면 판매실적이 485% 증가했다. 혼다의 견인에 10월 일본차 판매량도 1977대로 대폭 증가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주유권 증정보다는 차량 가격을 대폭 내리는 작전이 시장에 통한 셈이다.

도요타는 이달부터 '연말 특별 프로모션'을 내세워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브4, 준대형 세단 아발론 하이브리드 차량 가격을 각각 500만원, 300만원 깎았다.


업계는 도요타의 차량 가격 할인도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이전까지 가격 할인은 거의 제공하지 않았고, 불매운동으로 판매량이 급감한 직후에도 주유권 증정 등의 우회적 혜택을 내세울 뿐 가격 할인에는 나서지 않았던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요타가 딜러할인 외에 공식적인 가격 할인을 제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불매운동과 8자리 번호판 등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은데다 연식변경까지 앞두고 있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다른 차량들에 대해서도 가격 할인을 제외한 구매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준중형차 뉴 프리우스는 24개월 무이자 할부 또는 250만원 주유권 증정, 미니밴 시에나에는 36개월 무이자 할부 또는 400만원 주유권 혜택을 준다.

일본차 판매량은 지난 7월 불매운동이 시작되며 대폭 쪼그라들었다. 도요타, 렉서스, 혼다, 닛산, 인피니티 등의 총 판매량은 7월 2674대, 8월 1398대, 9월 1103대로 매달 급감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7월 17.2% 감소했고 8월과 9월은 각각 56.9%, 59.8% 줄었다. 그나마도 렉서스 판매량 감소가 적었던 탓에 전체 감소폭이 절반 수준에 그쳤을 뿐, 혼다·닛산·인피니티 등은 80% 넘는 판매량 감소를 겪으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9월 1일부터 8자리 신규 자동차 번호판이 도입되며 일본차 브랜드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차량 등록번호가 부족해져 정부가 번호판을 바꾸는 시기와 맞물리며 새로 일본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8자리 번호판을 받아야 하게 됐기 때문이다.

보배드림 등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8자리 번호판이 달린 일본차 사진을 찍어 올리며 "나라 팔아먹을 놈들", "친일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8자리 번호판 일본차만 골라 정지선 위반, 실선 차선변경, 주정차 등의 신고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8자리 번호판 일본차 차주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일본차 구입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가장 먼저 칼을 뽑아든 곳이 혼다였다.



혼다가 시작한 폭풍 할인에 도요타는 물론, 닛산과 인피니티도 동참한다. 한국닛산은 베스트셀링 중형 SUV인 엑스트레일을 이달부터 1000만원 할인해 판매한다. 3460만원이던 차량이 29% 할인된 2460만원에 판매되는 것. 엑스트레일의 일본 가격은 227만2600엔(약 2409만원)으로, 한국으로의 운송료도 내지 않는 현지 가격에 판매하는 수준이다.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도 주요 차량 가격을 1000만원 이상 할인한다. 정상가 6220만원인 QX60 AWD 모델은 1400만원 할인된 4820만원에, 정상가 5760만원인 Q50 하이브리드 센서리 모델은 1500만원 할인한 4260만원에 판매된다. Q30, QX30, QX50 등도 1000만원 내외 할인이 적용됐다.

일본 브랜드 자동차 판매사 관계자는 "7월 말부터 전시장을 찾는 고객 발길이 끊기면서 영업사원들의 해고와 이직이 대거 이뤄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10월 중순부터는 전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드물게 있지만, 아직 구매 결정은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