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대행기사, 사업자 아닌 근로자"…플랫폼 기업들 '인건비 폭탄' 우려

입력 2019-11-05 17:28
수정 2019-11-06 00:55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플랫폼 기반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북부지청은 5일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업체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자회사인 플라이앤컴퍼니의 위탁계약 배달 대행기사 5명이 제기한 임금체불 및 계약변경 관련 진정에서 이들을 근로자로 분류했다. 서울고용청 관계자는 “이들이 시급제를 적용받았고, 실질적인 근로감독 및 지휘를 받은 정황이 있어 근로자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배달기사들은 지난 4월 시급제로 고정급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요기요에 합류했다. 서류상 신분은 개별사업자였다. 이들은 시급으로 1만1500원을 받았다. 사측은 7월 들어 배달기사들의 시급을 삭감했다. 배달기사들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위반했다며 8월 서울고용청에 진정서를 냈다. 출퇴근 기록을 모두 작성하고 사측의 지휘 감독도 받은 만큼 자신들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서울고용청의 판단을 받아든 배달대행업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플랫폼을 활용해 일하는 사람들을 근로자로 분류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등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r >
배달기사는 노동자? 개인사업자?
고용 논란에 '긱 이코노미' 비상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이번 판단은 진정을 제기한 요기요의 배달 운전자 5명에게 국한된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고용노동청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플랫폼 업계는 ‘시급을 받으면 근로자’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가 이번 판단을 지렛대로 삼아 플랫폼을 활용해 일하는 개인사업자들을 포섭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 관계로 보는 것은 무리”

업계에선 플랫폼 근로자들이 일반 근로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키는 일을 꼭 해야 할 의무도 없어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배달 기사들은 콜이 들어와도 일하기 싫으면 받지 않을 수 있다”며 “이런 근무 형태를 고용관계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도 서울고용청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고정급으로 오해가 있었지만 계약서에선 분명 개인사업자로 계약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달 수수료 등 플랫폼 이용 비용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배달대행업체 바로고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배달대행업체를 쓰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라며 “배달대행 기사의 근로자 성격을 인정하면 소상공인들이 배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배달대행업계에서도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을 내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 기사들은 4대 보험료를 다 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직고용보다는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에 더 익숙하다”며 “수입 면에서도 고정급보다 건당 수수료 방식이 유리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반면 노동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성종 민주노총 플랫폼노동연대 위원장은 “배달대행 기사는 하나의 지역에서 전속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노동3권 부여 등의 기타 권리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자 신분을 둘러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배달대행업계만이 아니다. 렌터카 기반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 역시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최근 검찰은 타다 서비스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라며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타다 기사들의 근로 형태를 자세히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다 운영진이 외부업체에서 인력을 공급받으면서 운전자들의 출퇴근 시간과 휴식 시간, 운행해야 할 차량, 승객을 기다리는 대기지역 등을 관리·감독했다는 게 골자다. 타다가 프리랜서 기사도 실질적으로 지휘 감독하고 있어 위장 도급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고용을 회피하려고 불법파견하는 업체로 오해받고 있다”며 “현행법상 차량대여사업자는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할 수 없다”고 했다.

우버도 노동 이슈로 ‘휘청’

해외에서도 플랫폼 근로자의 지위와 관련한 논란이 거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9월 차량공유업체가 계약한 근로자를 피고용자로 대우하도록 하는 법안(AB5)을 통과시켰다. 내년 발효되는 이 법안에 따르면 기업은 근로자의 근무 방식을 지휘·통제하고 있거나 근로자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해당 근로자를 임금 근로자인 피고용자로 지정해야 한다. 벌써부터 차량공유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를 기존 제도로 재단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면 최저임금도 지급하고 근로 시간도 지켜야 한다”며 “플랫폼 근로와 같은 혁신적 고용 형태를 과거 20세기 모델에 끼워 맞추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우리의 노동 제도가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견해다. 장병규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다양화되는 노동의 변화를 반영하지도, 혁신을 이끄는 인재들을 포용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긱 이코노미

기업이 고용하지 않고 수요에 따라 초단기 형태로 인력을 활용하는 것

배태웅/김남영/최한종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