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북 영덕의 한 항구마을. 취재를 끝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한 고깃집을 찾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 병을 혼자 비우던 무렵 옆자리에 있던 60~70대 10여 명이 모임을 끝내고 일어설 채비를 했다. “커피를 내올 테니 기다리라”는 주인의 말. 믹스커피를 담은 쟁반을 생각했지만 등장한 것은 인근 다방 종업원이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지역 인구 감소로 손님이 점점 줄어들자 저녁시간에도 배달 영업을 뛴다고 했다. 한창 커피를 따르는 가운데 걸쭉한 농담이 오고 갔다.
기자는 지난달 28일과 29일 이틀간 경북 의성 및 영덕에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 실태를 취재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 인구 감소로 ‘하늘이 무너져’도 희망을 찾을 만한 ‘구멍’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하지만 인적 사라진 마을과 노인들만 보이는 읍내를 돌며 예상은 빗나갔다. “인근 상인들이 모두 부채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자영업자의 말을 들으며 인구 감소 대응책의 하나로 우울증약 처방 확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부가 처음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내놓은 2006년 기자는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을 취재했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한길 전 의원의 사무실 책상에는 ‘소자화(少子化) 사회’라는 보고서가 올려져 있었다. 일찍이 인구 감소를 경험한 일본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분석한 내용으로 김 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당이 쪼개지고 있는 마당에 원내대표가 한가한 소리를 한다”는 말이 나왔다. 2020년 이후면 한국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도 ‘설마’라며 웃어 넘겼다. 그런 무심함이 쌓이는 사이 인구 감소는 더 빠르고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통계청의 ‘2050년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은 40%, 14세 이하는 9%로 완전히 역피라미드가 된다. 애 안 낳는 젊은 세대를 탓할 것도 없다. 기성세대 역시 남아 선호로 가임기 여성 인구를 줄였다. 저출산·고령화는 지금 대한민국에 발 딛고 있는 모두의 책임이고, 남은 생애를 통해 함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의성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고령화 대응을 어렵게 하는 것 중 하나로 출향인들의 향수를 꼽았다. 주변 환경과 치안을 감안해 빈집을 허무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 사라지는 것을 싫어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것조차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인류가 한 번도 직면해 본 적 없는 인구 재앙이라는 현실 앞에 제도부터 개인의식까지 하나씩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