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 '정암네' 팬덤…"배우인생 자신감 심어줬죠"

입력 2019-11-05 17:10
수정 2019-11-06 03:12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는 2005년 신시컴퍼니가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으로 제작해 초연한 이후 모두 732회 국내 무대에 올랐다. 누적 관객 수는 73만 명을 넘어섰다. ‘아이다’의 인기 비결로는 화려한 무대와 팝 거장 엘튼 존의 아름다운 넘버(삽입곡)와 함께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등 주요 인물들의 개성을 잘 드러낸 캐릭터가 꼽힌다.

이 중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빛나게 한 배우로 단연 정선아(사진)가 손꼽힌다. 2010년 두 번째 시즌과 2012년 세 번째 시즌에서 암네리스를 연기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 냈다. ‘아이다’의 마지막 대장정에도 정선아가 함께한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은 브로드웨이 원작과 같은 내용 및 무대 구성으로 선보이는 레플리카 공연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종료한다. ‘아이다’의 피날레 공연은 오는 16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열린다.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선아는 “요즘 리허설을 할 때 함께 연습하는 배우들을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려 한다”며 “장면 하나하나를 연기할 때마다 더 깊고 애틋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다’는 2002년 뮤지컬 ‘렌트’의 미미 역으로 데뷔한 정선아의 배우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가 맡은 암네리스는 통통 튀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이집트 공주다. 약혼자인 사령관 라다메스가 아이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암네리스는 크게 좌절하지만,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며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난다. 정선아는 이 작품의 암네리스 역으로 2013년 ‘더 뮤지컬 어워즈’와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배우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한데 암네리스는 제게 그런 역이었어요. 철없고 화려해 보여도 깊은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암네리스를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쓴맛을 봤다. 하지만 연출가 키스 배튼은 그런 정선아를 눈여겨봤고, 암네리스로 다시 오디션을 볼 것을 권했다. “작품이 ‘아이다’니까 무작정 아이다 역을 맡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제게 맞는 역을 찾는 게 중요했던 거죠.”

암네리스는 그에게 큰 자신감을 안겨줬다. ‘아이다’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인 암네리스의 패션쇼에서 그가 ‘마이 스트롱기스트 슈트(My strongest suit)’를 부를 때마다 객석에선 환호와 찬탄이 쏟아진다. 그 모습에 반한 팬들은 정선아에게 ‘정암네’(정선아와 암네리스를 합친 말)라는 애칭도 붙여줬다. “워낙 무대 예술이 뛰어난 작품이잖아요. 그 장치를 특히 암네리스에게 쏟아붓죠. 헤어부터 메이크업, 의상까지 모든 게 암네리스에게 집중됩니다. 정말 신나기도 했고 ‘내가 이런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었어요.” 이를 동력 삼아 정선아는 성장을 거듭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디바 자리에 올랐다.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만 ‘위키드’ ‘드림걸즈’ ‘웃는 남자’ 등 총 27편에 달한다.

7년 만에 다시 암네리스를 연기하는 그는 보다 연륜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여줄 각오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다’ 공연 자체의 일원이 되고 싶었어요. 두 번째 무대에선 원캐스트로 혼자 역할을 소화하다보니 체력 관리에 온전히 집중했어요. 이번 무대에선 배우 정선아를 빛나게 하기보다는 암네리스의 마음을 더 진중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극장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가 됐지만, 언젠가 소극장 뮤지컬에도 오르고 싶다고 했다. 그중 ‘렌트’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작품 ‘틱틱붐’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 그 작품을 봤는데 서른 즈음에 꼭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도 정말 좋고 연기적으로도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언젠가 그 역할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