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입 허용 여부를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직접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5일 관련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을 담당하는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가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생계형 '비추천' 결론을 내리고, 6일 이를 발표할 것이 유력하다.
비추천은 관련 이해관계가 첨예해 동반위가 생계형 지정 여부를 결론낼 수 없다는 취지다. 최종 결정권자인 정부, 중기부가 직접 결정해달라는 요구다.
동반위는 6일 이 같은 비추천 방침을 박영선 중기부 장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최근 중기부 행보가 시장 상생방안 마련에 집중되는만큼, 중고차 시장도 상생 합의을 토대로 대기업 진입을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분분하다.
◇ 동반위, 생계형 '비추천' 고심 왜?
동반위가 '비추천'이라는 표현으로 추천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미묘한 입장을 택한 건 그만큼 사안이 첨예하단 뜻이다. 기존 업체들이 생계형 적합업종의 대상인 소상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기존 중고차 시장이 잠식된다는 주장에도 타당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동반위 내부적으론 중고차 업계가 보호가 필요한 소상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수차례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소상공인은 업종별로 매출액과 상시근로자 수 등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중고차 매매업에 등록하려면 660㎡ 이상 자동차 전시시설과 사무실이 필수인데, 동반위는 이 비용을 감당하는 사업자는 소상공인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보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경우 통상마찰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한미 FTA와 한-EU FTA 시장 접근 규정에 자동차 매매업에 관련해 서비스 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서비스의 총 산출량,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법적 실체 등에 대한 제한을 두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동반위에 제출한 바 있다. 대기업 진출을 막는다면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접근까지 막혀 협정 위반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동반위도 이러한 우려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 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과 같은 취지로 앞서 시행됐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지난 2월 만료되면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만료로 국내 완성차 업체와 수입차 업체 등이 인증 중고차를 내세워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자본력 차이가 큰 탓에 기존 업체들이 도태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사가 참여하는 수입차 인증 중고차 사업은 2013년 10곳 미만이었지만 올해 100곳 가량으로 늘어났다.
◇ 공은 중기부로…상생협약 결론날 듯
생계형 적합업종은 해당 업종 자체가 영세하기 때문에 대기업 등 진출을 법적으로 막는 보호장치를 두기 위한 조치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출점을 제한하고 격주 휴업 조치를 내린 '골목상권 보호법'과 같은 논리다. 동반위가 소상공인 보호가 필요한 사업을 추천해 중기부가 판단,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정 사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은 5년간 사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을 원칙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위반 매출의 5%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중기부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대신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의 자율 상생협약 체결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동반위 역시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의 자율 상생협약 체결을 관련 중고차 업계에 제안한 바 있다.
사실상 대기업엔 시장 진입 길을 터주는 대신, 상생 방안을 마련해 기존 종사자를 최대한 보호한다는 취지다. 법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 경우 분쟁이 불가피한 만큼 이를 피하면서도 적합업종 지정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 추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 수입차 진영 "중고차 레몬마켓, 투자 필요"
5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중고차 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등의 논의와 관련해 소비자 안전과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이날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국내 중고차 시장이 연간 220만~230만대로 신차 시장의 1.6배에 달하며 금액으로는 연간 약 27조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소비자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전형적인 레몬마켓에 머물러있다"며 ""중고차 시장이 성장하려면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증중고차를 운영하는 한 수입차 관계자는 "인증 중고차는 차량 허위 매물도 없애고, 차량 이력 조회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시작된 사업"이라며 "전문성에 기반해 수입 중고차를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도입했는데 생계형 적합업종에 막히게 되면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감을 드러냈다.
다른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동반위 결정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기가 사실은 조심스럽다"며 "수입차 업계가 대기업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비추천 결론이 난다면 부담은 덜게 되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 상생 협약에 양대 연합회 입장차 '극명'
국내 중고차 업계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한국연합회)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전국연합회)가 양분하고 있다. 중기부 의중대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피하면서 자율 상생협약을 체결하려면 두 연합회가 동의해야 하는데, 이들의 온도차는 극명하다.
한국연합회는 이미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만큼 법적으로 대기업 진출을 막을 근거가 없고, 상생협약을 통해서라도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진출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어려울 경우 자율적인 상생협약 체결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연합회는 상생 협약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생계형 지정이 무산될 경우 실력 행사에 나서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면서 현대차그룹과 케이카(옛 SK엔카)을 대기업으로 분류, 사업 중단 내용 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현대캐피탈 할부 지원과 현대글로비스 중고차 경매 참여도 거부하고 나섰다.
양대 연합회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중고차 매매·매도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양보는 없다며 전면전을 준비 중인 전국연합회를 설득하는 작업이 중기부가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았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연합회와 전국연합회는 연석회의를 열고 대기업 진출 공동 저지를 위한 논의를 가졌지만, 극명한 온도차 탓에 협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무산될 경우 상생협약이 성사돼야 기존 업계가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세성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