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냐 류보머스키 미국 UC리버사이드 심리학과 교수(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류보머스키 교수는 30년 가까이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고 있는 심리학자다. 2002년 세계적 권위의 템플턴 긍정심리학상을 받았다. 저서 <행복의 정석>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의 신화>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6~7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9’에서 ‘일과 행복의 방정식’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류보머스키 교수는 한국의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해 “근무 시간을 줄이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저서 <행복의 신화>에서도 그는 “주 40시간씩 67세까지 일한다고 가정하면 10만 시간 가까이 일하게 된다”며 “우리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의 4분의 1을 일하는 데 투자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행복한 일터’를 ‘업무에 대한 만족감과 자율성이 높고, 좋은 동료들이 있는 직장’으로 정의하면서 “근로자가 느끼는 행복감은 근로시간보다는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신기술을 개발 중인 연구원들이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일할 수 없어 생산성을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성취감이 낮아지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직장인 사이에서 부는 ‘퇴사 열풍’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조언했다. 현재 직장에서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찾기 힘들거나 직장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새 직장을 구해야겠지만, 단순히 ‘퇴사가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새 직장에 다니면 처음엔 신선한 느낌이 들겠지만 익숙해지면 금세 또다시 권태가 찾아올 것”이라며 “변화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서도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류보머스키 교수는 “요즘 한국에서는 일보다는 개인적인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일각에서는 일과 행복은 무관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는데 이는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면서 느끼는 행복감도 워라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출산 및 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 우려를 해소해 한국 직장인들의 워라밸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적으로 남성의 육아 휴직을 강제해 여성 직장인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업 임원들의 솔선수범도 주문했다. 예컨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딸이 태어난 뒤 출산 휴가에 들어가 직원들의 롤모델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보머스키 교수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행복은 대인 관계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반드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의 큰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이어 “새로운 대인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행복감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9세 때 옛 소련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하버드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를 통해 행복은 유전적 요인 50%, 환경 10%, 노력 40%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유전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완벽히 치유할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고 좋은 경험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