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시설의 1인당 수용면적이 너무 좁아 수용자들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법무부가 사실상 전패하고 있다.
1~2심에서만 여섯 건 패소해 178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고, 현재 30건에 7억4000만원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체 수용자의 90%(4만9100여 명)가 비슷한 처지여서 이들이 모두 소송을 제기하면 정부 배상 규모는 수백억원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로선 새로운 수용시설 신축이 급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관련 예산은 한 번도 책정되지 않았다.
수감자에게 정부가 줄줄이 패소
오민석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6단독 부장판사는 최근 교도소에 수감 중인 A씨가 “좁은 수용 면적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A씨에게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는 상당한 기간 1인당 면적이 2㎡에 미달하는 위법한 과밀 수용으로 기본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갖지 못한 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공권력의 행사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위법 행위이므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교도소와 구치소의 과밀 수용에 따른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은 2011년 처음 제기돼 현재 61건 접수됐다. 2017년 23건 제기되면서 관련 소송이 급증했다. 61건 가운데 교정시설과 합의해 소를 취하하거나 사실과 다른 소 제기로 법원이 기각한 31건을 제외하면 30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 규모는 7억4000만원이다.
이 중 1~2심 결과가 나온 여섯 건에서 정부가 패소해 178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과밀 수용은 수용자 인권 침해뿐만 아니라 수용자의 재범률을 높이는 요소라고 보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권 측면에서 과밀수용은 시정돼야 마땅하다”며 “선택과 집중으로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자에 대한 선별적 수용을 통해 과밀화를 낮추는 과학적 형사정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수감자 90%가 소송 가능
국내 교도소와 구치소의 1인당 수용면적은 1.8~2.3㎡(0.5~0.7평)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교정시설 정원은 4만7990명인데 실제 수용인원은 지난 10월 말 기준 5만5000여 명(수용률 114%)으로 심각한 정원 초과 상태다. 전국 교정시설 53곳 가운데 45곳이 정원을 넘었다. 이는 국제적으로 봐도 크게 낙후된 수준이다. 교정기관 수용인력이 5만7000여 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일본은 수용률이 70%에 불과하다. 30%를 여분의 공간으로 준비해놓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5년) 수용률도 한국보다 낮은 97%다.
법무부는 국가의 잘못이 명백하다는 측면에서 향후 ‘혈세’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일정 규모 이하 면적의 구치소에 수용한 것은 위헌”이라며 법무부에 교정시설의 1인당 수용면적을 2.58㎡ 이상 확보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유엔이 정한 피구금자 처우 최저 기준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제기될 소송 규모다. 교정 전문가들이 추산한 ‘교정시설 과밀화’에 따른 피해로 소송이 가능한 수용자는 4만9100명으로 전체의 90%에 달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밀 수용의 피해를 본 4만9000여 명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정부는 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교정시설 신축에 우호적이진 않다. 경남 거창구치소는 주민 반발로 신축 추진 후 4년째 공사가 중단됐다. 법무부는 가석방을 늘려 교정시설 수용인원을 줄인다는 계획이지만 최근 성폭력, 마약, 음주사고 등 범죄자들의 가석방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