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47)가 한국에 온다.
공연 기획사 빈체로는 최근 공개한 ‘2020년 주요 공연 일정’에서 내년 4월 7일과 8일 쿠렌치스가 그의 악단 ‘무지카 에테르나’와 함께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고 밝혔다. 2016년 쿠렌치스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을 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가 협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첫 방한 연주의 프로그램은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모두 베토벤 곡으로 꾸몄다. 7일에는 베토벤 교향곡 7번, 8일엔 교향곡 5번 ‘운명’을 들려주고 이틀 공연 모두 코파친스카야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최근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핫’한 쿠렌치스의 첫 내한 공연 소식에 유튜브 및 음반을 통해서만 그의 공연과 연주를 즐겨왔던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쿠렌치스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지휘자다. 예상을 뛰어넘는 극적인 표현과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도발적인 해석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도 새로운 감각으로 그려내는 신선함에 관객들은 환호하고 있다. ‘파격을 넘어 충격’이라며 클래식계 일각에서 불거진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운 것은 2017년 발매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앨범이다. 역동적인 완급 조절과 현의 속도감, 몰아치는 금관은 세련되면서도 쿠렌치스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내놓은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도 최고의 앨범으로 찬사를 받았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이 앨범에 대해 “1950년대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의 해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복고적 느낌이 강하면서도 결과물은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특이한 창작물”이라고 평가했다.
음반의 인기와 더불어 쿠렌치스를 향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이 합병해 새롭게 출범하는 SWR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올여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로 개막 무대에 올라 파격적인 해석으로 화제를 낳았고, 잘츠부르크와 함께 최고의 음악축제로 손꼽히는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도 모차르트 갈라 콘서트를 선보였다.
쿠렌치스가 구사하는 음악만큼 지휘자로 그가 걸어온 길도 남다르다. 통상적으로 지휘자는 거장의 주변에 있다가 점차 이름을 알리고 베를린필이나 빈필 같이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경력을 쌓아간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러시아로 유학 온 쿠렌치스는 러시아 변방 작은 도시 페름을 근거지로 삼았다. 자신이 연주자들을 선발해 직접 창단한 ‘무지카 에테르나’를 이끌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이름을 알렸다. 기존의 ‘명성’을 앞세운 게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격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도 많다. 그의 이름 앞엔 주로 ‘이단아’란 수식이 붙는다. 2005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10년의 시간을 준다면 클래식 음악을 살려내겠다”는 패기 넘치는 말을 남겨 ‘클래식의 구원자’로 불리기도 한다.
유형종 음악평론가는 “무지카 에테르나는 좀 거친 느낌이 날 수 있지만 쿠렌치스의 개성과 잘 맞을 것”이라며 “과격하지만 신선한 표현으로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