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8일과 9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차이로 당선됐다. 글로벌 교역 둔화와 저성장의 위기에 직면한 양국 국민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두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행보부터 엇갈렸다. 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며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3대 노동단체 수장들을 파리 엘리제궁으로 불러 “과도한 노조 기득권을 줄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노동개혁을 예고했다.
두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주요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저(低)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는 고용노동부 ‘양대 지침’을 폐기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법인세율을 인상하고 실업급여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을 늘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득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노조의 협상 권한을 줄이고 방만한 연금을 수술했다. 투자 유치를 위해 부유세도 크게 축소했다.
출범한 지 2년6개월.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의 경제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최근 “유럽의 병자이던 프랑스가 건강의 상징이 됐다”고 찬사를 보낸 반면 한국에는 “최저임금 등 정부 정책이 민간 투자 위축을 초래했다”고 했다. 한국의 투자(총고정자본형성) 규모는 2017년 9.8%(전년 동기 대비) 증가에서 지난해 -2.4%로 돌아섰고 올해는 부진의 골이 깊어졌다. 반면 프랑스의 투자는 지난해 2.8%, 올 상반기 3.4% 증가했다. 고용 부문도 비슷하다. 한국 고용률은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만 15년 만에 최대폭 증가했다. 프랑스에선 올 2분기 고용률(65.7%), 정규직 비중(54.7%) 모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정부도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노동계,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며 “국정 후반기엔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등 과감한 개혁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hr >
韓, 비정규직 15년 만에 최대
佛, 노동 개혁해 실업률 11년來 최저
“기업을 돕는 정책은 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노동개혁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개혁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노조의 권한 축소, 공무원 감축 등으로 당장은 노동자들이 손해보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기업의 고용 비용이 줄어 투자가 활성화되고 고용과 소비 등 경제 전반에 이익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진지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
2017년 5월 경총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으로 기업들이 힘들다”고 호소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기업이 노동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평등이 커졌는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질타한 것이다. 양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들의 철학과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권력화된 노조’를, 문 대통령은 ‘탐욕스러운 기업’을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임기 내내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환호와 시위, 엇갈린 두 대통령
취임 첫해 대부분 시민은 문 대통령의 생각에 손을 들어줬다.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은 9월(69%)과 12월(69%)을 제외하고 모두 70%대 이상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최저임금 16.4% 인상과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짧게 일하면서 임금은 많이 주고 평생 고용을 보장해준다는 ‘이상’에 대다수 노동자는 박수를 쳤다. 여기에 건강보험 혜택을 대폭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도 속전속결로 시행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임기는 초반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인기가 없는 정책만 추진했기 때문이다. 임금·근로조건에 대한 노조의 협상권을 축소하고, 부당 해고 시 배상금을 줄였다. 임기 내 공무원을 17만 명 늘리기로 한 우리 정부와 달리 프랑스는 2022년까지 공무원을 12만 명 축소하기로 했다. 부자에게 0.5~1.8%의 세금을 물리는 ‘부유세’도 폐지했다. 개혁에 대한 반발은 예상보다 더 컸다. 2017년 10월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을 일으켰고 지난해부터는 전국에서 ‘노란조끼’ 시위가 시작됐다. 취임 직후 64%였던 지지율은 작년 하반기부터 20%대로 떨어졌다.
생산성 높이는 정책 내놔야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올 들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23%로 바닥을 찍었던 지지율은 올 1월 27%로 오르더니 줄곧 상승했다. 지난달엔 34%까지 올랐다. 개혁의 성과가 경제 지표에 나타나기 시작한 영향이 컸다. 올 2분기 프랑스 고용률은 65.7%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고였다. 실업률은 11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기업의 투자 열기는 뜨거워지고 있다. 올 1~3분기 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3.4% 증가해 작년(2.8%)보다 개선됐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 등 한국 정부의 친노조 정책은 고용 악화,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실업자는 113만 명으로,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로 치솟았다. 일자리가 줄면서 불평등까지 심해졌다.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작년 1분기와 2분기 각각 8.0%, 7.6% 감소했다.
물론 경제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가 사상 최대인 3조4000억원을 기록하고 창업 회사가 10만 개를 돌파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는 등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등 경제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는 듯한 모습도 감지된다. 하지만 경제학계에선 아직까지 경제 활력을 북돋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하거나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신을 버리는 것이 먼저”라며 “노동개혁과 규제개혁 등을 통해 생산성을 올리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설지연 기자 morandol@han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