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똥강 맥주'는 왜 '대동강 맥주'가 될 수 없을까

입력 2019-11-03 08:41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대동강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줄 알고 놀랐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대동강' 맥주가 아닌 '대똥강' 맥주더라고요. '이렇게 팔아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대동강 맥주를 가져다 놓으면 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직장인 강현섭 씨(28)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술집을 찾았다. 지난 달 문을 연 이 가게는 북한을 연상시키는 외관과 인테리어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메뉴판에서 강 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동강 맥주'였다. 지난 2012년에 대니얼 튜더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한국 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평가해 대동강 맥주의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녹색 라벨에 힘 있는 붓글씨. 영락없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 같아 보이지만 실제 이 맥주는 독일에서 제조된 '웨팅어 바이스'다.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을 자세히 보면 '본 제품은 독일연방공화국 제품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가게는 왜 '대동강 맥주'가 아닌 '대똥강 맥주'를 팔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애초에 대동강 맥주를 판매할 수 없다. 지난 2011년까지는 우리나라에 대동강맥주가 수입됐지만 이후 천안함 사태로 인해 5·24조치가 시행되며 수입이 중단됐다.

그렇다면 이 업체는 왜 '대동강 맥주'가 아닌 '대똥강 맥주'란 라벨을 붙인 것일까. 원산지가 독일인 이 맥주에는 대동강 물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약칭 식품표시광고법) 제8조 1항 5조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았거나 지역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지역 이름을 제품명에 포함하면 법 위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수제 맥주 기업 '더부스'는 덴마크의 미켈러와 함께 '대동강 페일에일'을 만들어 판매하려 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제품명은 대동강 물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대동강 물로 만들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이 업체는 '동'자에 'censored(검열됐다)'라는 스티커를 붙여 현재까지 '대강 페일에일'로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동강과 어감이 비슷한 '대똥강'은 문제가 안 되는 것일까. 식약처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글자를 틀리게 적어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독일에서 제조했다는 문구도 명확하게 기재해 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 조항을 위반할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주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사업주가 고의적·악의적으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면 지자체는 해당 사업주를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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