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국 사태’ 관련 사과 기자간담회는 여러 면에서 미흡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후 보름 넘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다 쇄신 요구가 당 내부에서도 커지자 등떠밀리듯 나선 모양새부터 그렇다. 게다가 사과의 말은 세 문장으로 짧게 끝내고, 야당과 검찰에 대한 비난은 길게 늘어놓아 책임 전가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두 달 반 동안 나라를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간 주요 당사자로서 쇄신책 없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실망을 키웠다. ‘뻣뻣한 사과’가 더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조국 사태’ 못지않은, 그보다 더한 많은 참사를 여권이 못 본 척 외면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가 언급한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이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의 ‘절대적 박탈감과 절망감’에 고통받는 국민이 차고 넘치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게 ‘일자리 참사’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경직된 ‘주52시간제’ 탓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새 87만 명 폭증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30·40대 가장들의 실직이 급증했다. 거대 노조가 정규직을 독식하는 바람에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들이 처음부터 비정규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 근무로 내몰리며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고용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 가장과 청년들은 심리적인 박탈감을 넘어 당장의 생계와 생존을 걱정할 만큼 절박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부환경을 탓하고 핑계찾기에 급급하다. 30대 상장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보다 54%나 줄어도 반도체 경기부진을 탓하고, 9월 생산과 소비 급감에 날씨와 ‘이른 추석’을 핑계로 내미는 식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단골 변명거리다. 미국과 중국이 상호 보복관세 부과를 단행한 2018년 7월 이전부터 한국 경제가 ‘나홀로 부진’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깔아뭉갠다. 더구나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은 3분기 성장률이 연 1.9%로 예상보다 선방했다. 중국과의 분쟁에 따른 경기하방 압력과 투자 감소를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로 보완한 덕분이다. 민간 소비를 활성화하는 정책적인 노력도 주효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우리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진보진영에서조차 “한국 경제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울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위기 돌파를 위한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재정 땜질’로 경제 지표와 통계를 마사지하고 현실을 호도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는 사이 기존 산업에서는 ‘노동귀족’이 노동약자를 착취하는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생산성 추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10년간 파업일수가 일본 도요타는 0, 독일 폭스바겐은 2시간인데 비해 현대·기아자동차는 171일에 달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판쳐 혁신적인 신산업이 싹이 트기도 전에 꺾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민과 기업인들이 경제현장에서 느끼는, 말로 다하기 힘든 박탈감과 절박함이 여당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