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은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는 북한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핀란드의 예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총, 균, 쇠> 저자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82·사진)는 31일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위기 상황과 극복방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핀란드는 위협적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 국가지도자급은 물론 말단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수준별로 끊임없이 대화했다”며 “(이를 통해)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뢰할 수 있게 돼 갈등 폭발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대화를 요란하게 홍보하지 않고 조용하고 내실있게 진행했다”며 “한국은 북한과 어쩌다 만난 것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핀란드처럼 위기 요인인 북한과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지속하는 게 한반도 평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문화인류학부터 역사, 과학, 미래 전망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온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 6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한 최근작 <대변동>(김영사)을 소개하기 위해 4년 만에 방한했다.
<총, 균, 쇠>가 인류문명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했다면 <대변동>은 미래에 대해 쓴 책이다. 각 국가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성공과 자멸을 결정짓는 터닝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짚었다. 그는 “국가 붕괴뿐만 아니라 세계 붕괴를 다뤘다”며 “32세인 쌍둥이 손자들이 63세가 되는 2050년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더 나아지기 위해선 사람들이 변하고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에 따른 세계 정세 불안에 대해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 낀 작은 국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쪽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며 “러시아와 서방의 틈에서 균형을 잘 잡아간 핀란드를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지만 중국은 독재체제를 택하고 있어 발전에 한계가 있다”며 “이번 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서는 지도자가 잘못된 일을 하면 국민이 반대하고 항의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현재 관심을 둔 분야는 리더십이다. <대변동>에서도 위기의 핵심적인 해결 방안으로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내부 갈등은 어느 정도 리더십을 통해 관리 가능하다”며 “한국 리더들은 정치적으로 좌파든 우파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요인을 찾아 단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