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전력의 출연금을 활용해 전력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사면 구입가의 10%를 환급해주는 ‘으뜸효율 가전 환급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 예산이 들어가야 할 ‘정책 비용’을 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김종갑 사장이 여름철 누진제 할인 등 각종 전기료 특례 할인을 모두 없애고 전기요금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적자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한전은 올 상반기에만 92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대통령 공약으로 한전공대 설립자금도 떠안은 상태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은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전의 자체 신용등급을 BBB-로 떨어뜨린 데서도 드러난다. 이런 판국에 정부가 고효율 가전 환급 비용까지 대라고 하니 “우리가 봉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한전 관계자의 설명은 정부가 공기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기업을 언제든 끌어다 쓸 수 있는 돈주머니로만 여기는 게 아닌가. 경영이 나빠진 공기업에서 많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공기업 평가에서 ‘사회적 책임’ 배점을 크게 높여 경영이 악화돼도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신규 채용 확대, 문재인 케어 등 정부의 정책 목표만 따라오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게 만든 탓이다. 경영 효율화 동기가 사라지면서 공기업이 ‘복지사업을 벌이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도 상장된 한전에 강요된 ‘정책 리스크’를 글로벌 투자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한전이 전기료 인상을 요구하는 데서 보듯 공기업 적자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생각하는 ‘공기업’의 정의가 뭔지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부터 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