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회계 빅4 외부감사 싫다, 바꿔달라"

입력 2019-10-30 16:59
수정 2019-10-31 02:26
▶마켓인사이트 10월 30일 오후 4시8분

정부로부터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배정받은 기업들이 “다른 회계법인으로 바꿔달라”고 무더기 재지정 신청에 나섰다.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4’를 기피하는 현상에다 각종 예외 규정을 활용한 기업들의 재지정 신청이 맞물린 결과다.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에 따른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빅4 감사 기피하는 중소기업들

3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감사인 재지정 신청 건수가 사전통지에 대한 의견제출 기한인 이날까지 3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 금감원은 2020년 감사인 지정을 위해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 회사 220곳과 ‘직권지정’ 회사 635곳 등 총 855곳을 선정해 감사인을 사전통지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이후 3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내년 처음 시행된다. ‘직권지정’은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거나 상장 예정인 기업 또는 관리종목, 횡령배임 발생 기업 등에 대해 지정된 감사인을 배치하는 것이다. 직권지정 사유는 내년부터 확대돼 3년 연속 영업손실이거나 최대주주 또는 대표이사가 자주 바뀌는 기업 등도 포함된다.

이번 신청의 대다수는 빅4에 배치된 직권지정 기업들이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가 깐깐한 데다 감사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을 우려해서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초 기업들의 회계감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것도 무더기 재신청의 배경이 됐다. 금융위는 이달 초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이 상위등급(대형) 회계법인뿐 아니라 하위등급(중소형)에도 재지정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외부감사규정’을 개정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이번 재지정 신청은 대부분 빅4를 피하기 위해 등급 하향으로 신청한 중소기업”이라며 “예비지정 단계에서 재지정을 신청하지 않은 기업들도 본지정 이후 추가로 신청할 가능성이 높아 수백 개 기업이 다시 지정되는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금융 에쓰오일 등 대기업도 신청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대상 중에선 KB금융지주, 에쓰오일, 아시아나항공, 메리츠종금증권 등이 감사인을 재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KB금융지주와 아시아나항공은 예비 지정된 EY한영이 비감사 용역 컨설팅을 맡고 있어 감사업무를 다른 회계법인으로 배치할 것을 요청했다.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를 위해 회계법인이 한 기업에 대해 감사와 컨설팅 등 다른 업무를 동시에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정KPMG가 지정됐던 코리안리도 재지정 신청에 들어갔다. 삼정KPMG는 코리안리의 새 보험회계기준(IFRS17) 자문을 맡고 있다.

삼정KPMG로 지정받은 에쓰오일은 대주주인 아람코(지분 63.4%)와 감사인을 일치시켜야 한다며 재지정을 요청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투자회사 중 외국인과의 출자 조건상 감사인을 한정하는 경우엔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아람코의 감사인은 PwC다. 이에 따라 에쓰오일은 PwC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삼일회계법인이 지금과 같이 그대로 감사인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메리츠종금증권과 같이 모기업과의 연결 감사 또는 그룹 내 계열사의 동일 감사를 위해 재지정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