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혹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공수처를 검찰 개혁의 하나라고 정당화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대한 권한을 가지고도 어떤 기관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의 분산을 이루는 것이 공수처의 핵심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위헌적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검찰, 사법부, 입법부를 무력화해 독재로 가기 위한 도구라고 맞서고 있다.
도대체 공수처가 뭐길래 이렇게 한쪽에서는 그게 없으면 안 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는 것일까?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권력형 비리 등의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검찰 권력을 분산·견제하고 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셋째, 공수처 설치 필요성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한다. 넷째, 정치적 중립성이 높은 독립적 수사기구다.
우선, 권력형 비리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공수처 없이도 전직 대통령, 대법원장, 대법관 등 무수한 고위공직자가 기소돼 일부는 실형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비리를 방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주장은 검찰의 비리를 다른 검찰이 덮어준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이라면 당연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공수처도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공산이 크다. 독(毒)으로 독을 누를 수는 있겠지만, ‘슈퍼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공수처를 통제할 장치는 패스트 트랙을 탄 두 개 법안 어디에도 없다.
셋째, 공수처 설치에 국민이 공감한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맞는 얘기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을 설치하는 데 동의하느냐’고 물으면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공수처 찬성은 줄고 반대는 늘고 있다. 리얼미터가 21일 YTN 의뢰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이 51.4%, 반대하는 응답은 41.2%로 나타났다.
넷째, 정치적 중립성이 높은 독립적 수사기구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수처장은 추천위원 7명 중 5분의 4 즉 6명의 동의로 추천하게 돼 있는데, 7명 중 2명이 야당 몫이므로 야당이 반대하면 추천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여당은 중립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여권이 지지하는 후보 한 명과 야권이 지지하는 후보 한 명을 추천하는 타협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대통령이 누굴 지명할지는 뻔하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 검사를 절반 이상 비(非)검사 출신으로 충원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공수처 수사관은 조사 경력만으로도 채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예컨대, 과거사 관련 위원회나 세월호위원회 같은 곳에서 조사 업무를 한 경력으로도 임명될 수 있다.
사실 공수처의 공표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공수처 기능을 포괄하는 검찰의 수장을 공수처장 정하듯이 임명해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바로 여기에 공수처를 설치하려는 진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를 정권과 코드가 맞는 특정 단체 출신 변호사나 각종 위원회 조사관 출신으로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라는 말이 있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컴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컴은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쉬운 말로 옮기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공수처를 미는 정부·여당의 설명과 사법부와 검찰을 무력화하는 정권의 보위부라는 비판 가운데 어느 쪽 설명이 더 간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