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산업은 제조업의 뿌리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소재가 부품, 모듈은 물론 최종 제품의 부가가치와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소재산업을 육성하려면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를 패키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신소재를 개발했다고 해도 이를 이용해 부품, 모듈 또는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새 소재 관련 제조공정 장비도 함께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일본의 3대 소재 수출 규제와 8월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결정은 소재산업이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민관 합동 즉시 대응체계’를 수립하고, 상용화가 시급한 과제를 중심으로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소부장 산업은 2001년 이후 생산이 3배(2001년 240조원→2017년 786조원), 수출은 5배(2001년 646억달러→2018년 3409억달러) 증가하는 등 외형이 크게 성장했다. 무역수지는 대규모 흑자 전환(2001년 9억달러 적자→2018년 1375억달러 흑자)이 이뤄졌다.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연구개발(R&D)에 5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낮은 기술자립도, 높은 대일(對日) 의존도 등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한 게 사실이다. 2018년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41억달러였는데, 소부장 부문 적자가 224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소재산업의 만성적인 대일 적자를 극복하고 국산화를 앞당기기 위한 전략이 절실한 이유다.
첫째,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된 정부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중·장기 R&D 및 상용화 로드맵을 세워 즉시 실행해야 한다. 처음부터 산·학·연·관이 함께 하고, 특히 산업체 의견을 많이 반영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융합·연합으로 기업이 원하는 연구에 주력해야 한다. 서로 다른 전공자가 서로 다른 기술을 융합할 때 시너지가 높아져 세계 최초, 최고의 신소재 개발이 가능해진다. 세라믹을 만난 섬유가 열에 강한 첨단소재로 재탄생해 탈(脫)일본화에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같은 성능이면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개발한 소부장을 써주고,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이 원하는 고(高)신뢰성 소부장을 개발해야 한다. 대학은 창의적 인력 양성과 기초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연구기관은 응용 및 실용화 연구와 산·학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R&D 과제는 기업이 원하는 연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 위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중·장기 원천기술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재연구, 중복연구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또 산업현장에 적합한 물적, 인적,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현장 밀착형 기업 지원을 통해 애로기술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창구가 소재 분야별로 구축돼 있어야 한다. 실용연구기관인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원스톱숍(one stop shop)’처럼 전화 한 통화로 애로사항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직은 열악한 신뢰성 전문평가 영역 보강도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기업하기에 좋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9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보급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법적·제도적 체계를 평가하는 ‘기술 거버넌스’에서는 33위에 그쳤다. 낡은 규제가 있다면 과감히 들어내야 한다. 한국이 점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산업계의 지적에 등을 돌려선 안 된다.
여러 소부장 국산화는 시간문제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만든 DNA를 물려받았다. 소재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역량은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