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들이 일군 것을 정부가 망치는 산업이 너무 많다

입력 2019-10-28 17:54
수정 2019-10-29 00:23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그래픽 게임을 개발하고 아이템 판매 등 수익모델을 만들어 ‘게임강국’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국내 상장 게임업체의 절반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중견 게임업체들의 파산도 속출하고 있다. 2017년 20.6%를 기록했던 게임산업의 성장률이 2년 만에 3%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무엇이 한국 게임산업의 위기를 부른 것인가.

모바일 게임 흐름을 적시에 따라가지 못하고,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의 신규 게임 유통을 막고 있는 게 미치는 악영향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게임업계가 혁신과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뼈아픈 대목은 정부가 게임업계의 혁신을 도와주기는커녕 가로막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잘나가던 게임산업은 2012년 ‘게임 셧다운제(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규제)’ 도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뒤 게임산업은 몇몇 인기게임으로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다시 위기를 맞았다. 게임 출시를 지연시킨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정부가 사실상 방조하다시피 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이용 과몰입에 대한 질병 지정 등의 규제가 겹치면서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게임업계에서 “정부가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기업과 시장이 일군 산업이 정부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한 사례는 게임만이 아니다. 바이오산업이 처한 현실도 비슷하다. 업계가 오랜 인내 끝에 반도체 이후 성장동력으로 키워 이제 겨우 주목받기 시작한 터에 경직된 회계처리 기준, 생명윤리 규제, 원격의료 금지 등이 갈 길 바쁜 바이오를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승차공유 등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유휴자원 활용이라는 본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정부가 기존 택시의 면허 매입을 조건으로 걸면서 카풀은 물론이고 타다까지 고사당하게 생겼다. 정부가 잘 모를 때 성장하던 암호화폐와 거래소는 정부가 알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경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산업도 비슷한 길을 걷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신산업만 그런 게 아니다. 시장 개방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아 성장가도를 달려온 유통산업은 온갖 규제 리스크에 직면해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도 대기업이 주도하는 업종이란 이유로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확 줄이면서 생태계가 취약해졌다. 이런 식으로 가면 살아남을 산업이 없다.

미국이 기업과 시장의 ‘천국’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특별한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한 정부가 산업의 자생적 성장을 방해하거나 규제하려 들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의 시장 진입을 방해할 목적으로 진입장벽을 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등 기존 산업은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플랫폼 경제와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신산업을 주도하는 신흥기업이 끝없이 출현하는 경제의 역동성은 여기서 나온다. 정부가 미국처럼 기업과 시장이 일궈내는 산업의 자유로운 진화를 보장할 때 혁신성장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