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요? 한국은 유심히 들여다보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 글로벌 벤처캐피털(VC)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에 괜찮은, 쓸 만한 스타트업이 많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AI 분야에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AI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재의 절대 숫자가 부족한 데다 데이터 규제가 심해 쓸 만한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는 게 VC들의 진단이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의 AI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에도 한국 기업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스타트업 조사업체 CB인사이츠가 올해 2월 발표한 ‘글로벌 AI 스타트업 톱 100’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보고서엔 한국 기업의 이름이 아예 없다. 중국과 영국, 이스라엘 기업이 각각 6곳 선정된 것과 대조적이다. 스웨덴, 일본, 독일, 인도, 캐나다 등도 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AI 스타트업의 본고장인 미국을 뺀 나라 중엔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CB인사이츠가 꼽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 11개 중 중국 기업이 5개를 차지했다. 유니콘 기업만 따져보면 미국과 기업의 수가 같다. 나머지 하나는 영국 기업이었다. CB인사이츠는 전체 숫자 면에선 미국에 밀리지만 상위권만 보면 중국과 미국 기업이 거의 대등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안면인식 등 이미지 기반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기업가치 1위 기업은 45억달러(약 5조2663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센스타임이다. 5만여 명이 모인 콘서트장에서 지명수배범을 찾아낼 만큼 정교한 안면인식 기술로 유명한 기업이다. 사람 및 사물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식별하는 데 오류가 거의 없어 미국에도 마땅한 경쟁기업이 드물다는 게 센스타임에 대한 VC들의 평가다.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상하이 소재 YITU테크놀로지도 23억6500만달러(약 2조7677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4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AI 플랫폼의 혈액에 해당하는 데이터 규제를 풀지 않으면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VC들이 한국 AI 기업에 관심조차 주지 않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