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일하고 그만둔 직원에게 2년차 휴가비를 전액 지급하라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강원 춘천에서 유명 빵집을 운영하는 A대표는 1년간 일하고 ‘창업하겠다’며 퇴사한 직원으로부터 최근 ‘2년차에 예정됐던 휴가비(연차휴가수당)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황당한’ 요구에 A대표는 노무사를 찾아 상담했지만 “정부 지침이 그렇다”는 말만 들었다. A대표는 “연차수당은 일하느라 그해에 불가피하게 휴가를 못 썼으니 대신 돈으로 보상하라는 취지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로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용노동부가 입법취지와 다른 무리한 행정해석으로 산업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가 1~2년차 근로자의 휴가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는데 고용부는 여기에 한술 더 떠 ‘1년 계약직’ 근로자에게도 ‘2년차 연차수당 청구권’을 부여했다. 사업주로선 12개월간 일한 직원에게 퇴직금에 1, 2년차 휴가 수당(26일)을 합해 14개월치에 가까운 임금을 줘야 하는 셈이다.
산업계는 “기업들이 계약직을 뽑을 때 고용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줄이려 할 것”이라며 “정부가 12개월 미만의 초단기 근로자 양산을 조장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법 취지는 ‘1~2년차 휴가 보장’인데…
2017년 11월 국회는 1~2년차 근로자들의 휴가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1년차 때 최대 11일의 월차 휴가를 쓰는 대신 2년차 연차 일수(15일)에서 이를 제외시켰다. 예를 들어 1년차에 11일의 휴가를 다 썼다면 2년차에는 4일만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1년차와 2년차에 각각 11일과 15일의 휴가를 별도로 쓸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논란은 고용부가 해당 법률을 행정해석하면서 벌어졌다. ‘2년차에 쓸 수 있는 연차휴가권은 2년차 직원뿐만 아니라 1년만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고 퇴사한 직원에게도 해당된다’는 현장 지도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고용부, 최신 대법 판결은 외면
고용부가 이 같은 판단을 한 것은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연차휴가권은 1년간 소정의 근로를 마친 대가로 확정적으로 취득하는 것으로 근로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는 소멸된다 할지라도 수당을 청구할 권리는 잔존한다”고 판결했다. 입사 1년차의 월차도 한 달 개근의 대가로 받는 것이므로 2년차 연차휴가권도 근무를 계속하는지와 상관없이 지난 1년간 일한 대가라는 게 고용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정반대 판결을 내놨다. 의정부 시설관리공단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정년퇴직일이 12월 말일로 돼있지만 실제 퇴직일은 이듬해 1월 1일이므로 연차휴가 수당을 달라”는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근로관계는 만 61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에 당연히 종료되고, 정년퇴직일에 휴가를 사용했다고 해서 퇴직일이 다음날로 미뤄지는 것은 아니다”며 “이듬해 연차휴가에 대한 권리를 취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종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단순히 계약기간이 1년이라는 이유로 고용관계가 종료됐음에도 새로운 연차휴가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기간제 근로계약의 본질이나 개정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지난해 대법 판결은 기존 판례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 이후 1년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존의 행정해석을 유지한 채 뒷짐을 지고 있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불리
산업현장에서는 고용부가 황당한 법 해석으로 현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만리동에서 의류제조업을 운영하는 김영철 씨는 “앞으로 직원을 쓸 때 11개월짜리 계약을 하든지 해서 1년을 넘기지 말라는 소리”라며 “현장 사정을 전혀 모르는 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자들은 근무기간이 1년에서 하루만 빠지더라도 2년차 연차휴가수당은커녕 퇴직금도 못 받게 된다.
해당 법을 개정한 국회에서도 고용부의 행정해석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환노위 야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은 “1년만 다니기로 근로계약을 하고 회사를 그만둔 직원에게 2년차 휴가에 대한 청구권을 준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고용부는 당장 행정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실 관계자도 “입법 취지는 최초 1년간 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2년차에 휴가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용부가 입법취지를 벗어나 과잉 해석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