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공부합시다] 한국도 소비·투자를 위축시키는 디플레이션 '공포'…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경험을 잘 연구해서 대응해야

입력 2019-10-28 09:00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0.4% 하락했다.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오랫동안 빠졌던 ‘디플레이션’이 한국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 과정에 유사한 점이 많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휘청거리고 있고, 고령화·저출산 심화로 성장 약세를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잃어버린 20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 경제는 왜 장기침체에 빠졌던 것인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장기침체는 종종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린다. 이 사례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왜 무서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1980년대 초까지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자동차, 전자기기 등 제조업 부문에서 질 좋은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좋은 것은 모두 일본산이라고 할 만큼 거대 시장 미국과 세계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 수출과 대미 경상수지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미국이 일본에 먹힌다는 여론이 심화되자 미국은 일본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일본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플라자 합의’는 그래서 체결됐다. 일본도 미국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플라자 합의는 일본이 예상했던 것보다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이 됐다. 일본 경제가 침체하자 일본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금리 인하 효과로 소비가 증가하자 일본 내수시장이 성장했다. 시중 자금은 그러나 잘못된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버블이 그 결과였다.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활황세가 1990년을 기점으로 꺾이면서 자산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기업들도 위기를 의식해 투자를 줄였다. 고용이 연쇄적으로 악화됐다. 고용이 나빠지자 가계소득이 줄었고, 재차 물가가 하락했다.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구조였다.

돈을 풀어 물가를 올리려는 ‘아베노믹스’

일본의 장기침체는 201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아베노믹스’가 시행됐다. 아베노믹스란 유동성 확대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부양책이다. 연간 물가 상승률 2%를 상한선으로 정하고 과감하게 금융 완화(통화공급 확대), 엔화 평가절하, 확장적인 재정 정책, 적극적인 성장 정책을 추진했다. 한마디로 아베노믹스는 무제한 돈풀기였다. 이를 통해 경제 주체들의 인플레 심리를 자극하고,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경제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7월 말 일본 내각부는 올해 실질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낮췄고, 소비자 물가상승률 또한 0%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도 장기 불황을 떨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포의 디플레이션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가계·기업이 느끼는 심리적 향방이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일본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지만, 돈은 잘 돌지 않고 물가 또한 연간 목표치인 2%를 달성하지 못했다. 또한 상당한 규모의 일본 국가부채로 인해 가계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였다. 기업 또한 줄어든 소비를 걱정하면서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올해 일본의 2분기 민간 설비투자가 1분기에 비해 0.2% 증가하는 데 그친 것만 봐도 일본의 경제심리가 바닥권임을 알 수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

인플레이션(inflation)의 반대 개념으로 일반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플라자합의[Plaza Accord]

1985년 미국·프랑스·독일·일본·영국(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