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차석용 매직

입력 2019-10-25 17:20
수정 2019-10-26 00:06
한국 대표 기업들이 줄줄이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요즘, 독야청청 새 역사를 써 나가는 회사가 있다. 바로 LG생활건강이다. 그제 발표한 3분기 매출은 1조964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1%, 영업이익은 3118억원으로 12.4% 늘었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가 56분기째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나가는 기업도 부침을 겪게 마련이다. 경영에는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LG생활건강은 이런 상식을 무너뜨려왔다. 2005년 이후 14년간 한 해도 빠짐 없는 성장이라는 ‘기적’을 일궈왔고 기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거기엔 차석용 부회장이라는 발군의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차 부회장이 취임한 뒤 14년간 매출액은 7배, 영업이익은 20배 가까이 늘어났다. 14년간 시가총액은 4287억원에서 19조7000억원가량으로 46배가 됐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실적으로 ‘기록의 사나이’ ‘매직맨(magic man)’으로도 불리는 차 부회장은 미국 P&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한 경우다. 그는 화장품이 주력이던 LG생활건강을 생활용품과 음료 등 3개 부문으로 재편해 견고한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20개 이상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사들여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별명도 얻었다. 럭셔리 화장품으로 중국을 공략해 ‘사드 보복’도 정면으로 돌파했다.

놀라운 실적에도 불구하고 차 부회장은 언론 노출을 자제해왔다. 그의 경영 비법을 둘러싼 궁금증이 커진 것도 그래서다. 마침 그가 입을 열었다. 지난 7월 출간된 <그로잉 업>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가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으로, 차 부회장은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내진설계’를 매우 중시한다. 고정비 절감, 소통을 통한 스피드 경영, 사업 다각화 등이 골자다. 특히 소통을 중시해 불필요한 회의와 문서를 없애고 모든 직급도 3단계로 줄였다. 파벌 없는 조직, 공정한 성과 평가 역시 그가 중시하는 인사 원칙이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이 어려운 것들을 밀어붙인 그의 뚝심이 지금의 LG생활건강을 만들었을 것이다. ‘차석용의 매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