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한·일 대화 이젠 공식화"…아베 "상황 이대로 둬선 안돼"

입력 2019-10-24 17:25
수정 2019-10-25 01:40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4일 일본 도쿄에서 회담을 하고 한·일 양국 간 관계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지난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세 가지에 대한 수출규제를 감행한 이후 처음으로 양국 최고위급 인사들이 만나 관계 회복의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날 만남에서도 아베 총리는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 실제 관계 회복에 이르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21분 회담…표현도 ‘면담’에서 ‘회담’으로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이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총리와 만나 21분간 회담했다. 예정 회담시간 10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영빈관이 아니라 외교 실무진의 즉각적인 보좌를 받을 수 있는 총리관저에서 예정보다 두 배 긴 시간 동안 이 총리와 대화했다는 점에서 일본 측이 이날 만남에 큰 신경을 썼다는 분석이 많다.

만남 명칭도 일본 측 요청으로 애초 예정됐던 ‘면담’에서 ‘회담’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양국 관계 회복의 해법을 논의하는 외교 협상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두 총리는 양국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 총리는 회담 말미에 문재인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다. 한 장 분량의 친서에는 한·일 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친서에 대해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이 총리는 “시기나 장소에 대한 언급 없이 양국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얘기했고, 아베 총리는 (대답 없이) 들었다”고 전했다. 다음달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제가 언급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회담 뒤 한국 취재진과 만나 “그동안 비공개로, 간헐적으로 이어져 온 대화가 이제 공식화됐다”며 “아베 총리의 발언 속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했으니 공식화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베 총리가 ‘상황을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여러 분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한 말은 약간의 변화라고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여전한 한·일 간 인식 차

이날 회담은 형식 등에선 일본이 한국을 예우해준 모양새를 취했고, 양국 간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지만 한·일 대립의 기본 틀을 허무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아베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겨냥해 “국가 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힌 점이 주목된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기존의 대한(對韓) 공격 프레임을 고수한 것이다. 이 같은 아베 총리의 공세에 이 총리가 “한국은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날 회담은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기보단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해 나가자는 추상적인 선언 수준의 합의에 머물렀다.

일본 언론도 이번 회담으로 양국 간 입장 차가 더 뚜렷해졌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양국 간 대화 지속의 중요성에는 의견 일치를 봤지만 회담은 ‘평행선으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도 징용 문제에 대한 자국 입장을 명확하게 전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직접 명확하고 일관된 의견을 확실하게 전한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의례적 회담’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저녁 2박3일간의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이정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