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대납까지…고덕그라시움 세입자 모시기 경쟁

입력 2019-10-24 17:09
수정 2019-10-25 00:39
최근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사진) 전용 59㎡ 전세를 구하던 이형선 씨(32·가명)는 부동산중개업소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받았다. 입주 마감일에 맞춰 전세 계약을 할 경우 전세 보증금(3억8000만원)을 다 마련할 때까지 공인중개업소가 잔금(3억4200만원)을 대신 납부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살고 있던 기존 전셋집이 입주 마감일 전에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전세 계약을 망설이자 공인중개업소에서 먼저 대납을 제안해왔다”며 “이자도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입주 완료 시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고덕그라시움 집주인들이 세입자 구하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24일 고덕그라시움 인근 C공인 관계자는 “1층이거나 지하철역과 거리가 멀어 전세가 잘 안 나가는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낮추고 자비로 에어컨을 설치해주겠다는 등 여러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세입자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동구 내 올해 새 아파트 1만 가구가 입주하며 이 중 절반에 달하는 4932가구가 고덕그라시움에 짐을 푼다. 잔금을 치러야 하는 입주 마감일(12월 20일)이 다가오면서 고덕그라시움에선 세입자가 왕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고덕그라시움에는 현재 28%가량이 입주를 마쳤다. 잔금을 납부하고 입주증을 받아 간 가구는 2200가구 정도로 약 45% 수준이다. 단지 앞 상가에 있는 R공인 대표는 “전셋집 찾는 사람보다 세입자를 구하는 집주인 전화가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가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대부분 집주인이 전용면적 84㎡ 기준 4억5000만원, 전용 59㎡는 4억원 안팎에 매물로 내놓고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관측이다. 가구 수가 많아 입주 마감일 전에 잔금을 치르려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어서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열흘 전만 하더라도 융자 없는 전용 84㎡ 전세 매물은 5억원, 4억30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3000만~4000만원가량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입주 마감일을 지난 뒤 잔금을 치르지 못할 경우를 우려한 집주인들이 싼 물량을 내놓고 있지만 계약 체결이 쉽지 않자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도 세입자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다. 이 단지를 중개하는 일부 중개업소 사이에선 세입자들에게 이자 없이 잔금을 빌려주거나 대납해주는 행위가 관행처럼 일어나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입주 마감일 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잔금을 연체하면 미납 기간에 부과되는 연체료율이 연 7.95~10.95%에 달한다”며 “한꺼번에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대단지는 입주장을 앞두고 전셋값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