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루머 딛고 '82년생 김지영'으로 악플까지 넘어선 정유미

입력 2019-10-23 16:39
수정 2019-10-23 16:40


배우 정유미에게 지난 1년은 데뷔 이후 가장 혼동과 격동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2004년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한 이후 '가족의 탄생', '연인들' MBC '케세라세라',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연애의 발견' 등을 통해 색깔있는 연기를 펼치며 차근차근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쌓아왔던 정유미였다. 여기에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시즌2까지 제작된 tvN '윤식당'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얻었지만 동시에 악성 루머의 주인공이 됐다.

'윤식당'에서 정유미는 소탈한 매력을 뽐냈다. 머리띠부터 가방까지 하고 나온 아이템들을 모두 유행시키며 화제몰이를 했지만 의외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결국 정유미는 법적대응을 했고, 악성루머 유포자들에겐 올해 8월 3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82년생 김지영'은 정유미가 악플과의 전쟁을 벌일 때 선택했던 작품이었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은 출간 2년 만에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지만, 페미니즘의 불씨가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소녀시대 수영, 레드벨벳 아이린, 배우 서지혜 등 독서 인증샷만 올려도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정유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후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김지영은 흔들림 없이 '82년생 김지영'의 타이틀 롤 김지영을 소화해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며 일상 속 차별에 마음이 병들어가는 김지영을 보여줬다. 정유미의 열연과 함께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의 메시지에서 나아가 치유와 화합까지 제안하는 데 성공했다.

'82년생 김지영' 개봉을 앞둔 시기에 정유미를 만났다. "머리가 이마를 찌른다"면서 사과 머리를 하고 해맑게 웃으며 등장한 정유미는 다소 예민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질문에도 진솔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 기대도, 우려도 컸던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낌처럼 나온 거 같아요. 시나리오도 그렇게 차분했어요. 감정적으로 증폭되는 부분도 있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땐 조용한 음악 속에 차분해지잖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덮었을 때 한동안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여러 부분에서 뭉클했던 부분이 있어요. 연기할 땐 어땠나요?

어린 지영이가 엄마한테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왜 안 했어?'라고 묻는 장면이 있어요. 엄마가 '그땐 오빠 공부시키느라 못했고, 지금은 지영이, 은영이 엄마해야지'라고 답하는데, 시나리오를 볼 땐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뭉클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주변의 엄마들도 생각이 나고요. 엄마는 엄마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당연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83년생이더라고요. 지영이랑 1살차이예요. 또래라서 더 익숙하고, 공감이 됐을 거 같더라고요.

제 주변에도 지영이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있어요. 이 작품을 하고, 연기를 하고 나서 그들을 보는 시선에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당연하다, 다 그렇게 사는 거다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이 정도 달라지는 걸로 뭐가 그렇게 크게 바뀌겠냐 싶지만, 인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반대로 미혼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거나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배우의 일이라는 게 겪어보지 않은 걸 해내는 거잖아요. 작품을 선택할 때부터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공감이 가게끔 하는 게 저희 몫인 거 같아요. 손목보호대를 한다거나 아이를 안기 위해 힙시트를 착용한다거나 하는 건 잘 몰랐던 부분인데, 감독님이 육아를 해보셨던 분이라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어요. 그런 부분에는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 '82년생 김지영'을 하면서 결혼관에 변화가 있던가요?

원래부터 비혼주의자도 아니었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이나 각오가 있지도 않았어요. '하게 되면 해야지' 정도요.(웃음) 작품은 작품으로만 생각했어요. 결혼한 저의 삶과 빗대어 생각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 살면서 김지영과 같은 차별을 겪은 적은 없나요?

불합리한 일들을 겪은 적은 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힘들었던 기억을 굳이 생각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일로서 비교하자면 감사한 것들이 더 많았고요. 그래서 배우라는 일이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는 남동생이 있지만 저에게 더 많이 맞춰주셨던 거 같아요. 그걸 몰랐었는데, 이번에 알게 됐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누군가의 양보 덕분이었구나. 그런 지점들이 다가왔어요.



▲ 극중 김지영이 빙의를 하면서 친정 엄마, 학교 선배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데요. 그때마다 미묘한 톤의 변화가 있어요. 연기자로서 각각의 인물을 차별화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고민했나요?

감정 전달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요. 확확 변화한다면 극의 전개에 방해될 수 있다는 판단을 저도, 감독님도 했고요.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어느 현장, 어떤 캐릭터를 하든 똑같아요. 제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 악플러 고소 등으로 힘들 때, 작품에 대한 논란으로 소란스러울 때 연기를 해야했어요.

외부적인 게 저를 방해하는 게 싫어요. 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랑 상관없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만드는 분들과 한마음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계속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순리대로 찍었어요. 고사를 지내고. 제가 김지영이니 매일 현장에 있었는데, 촬영장에 있다 보면 친정 식구들도 만나고, 시가 식구들도 만나고 그렇게 잘 지냈어요.

▲ 예능에서 정유미 씨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직 계획은 없어요. 계획을 세우고 하는 것들이 아니어서. 타이밍이 맞아야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 '정유미, 공유가 너무 예쁘고 잘생겨서 현실성이 없다'는 캐스팅 논란도 있었더라고요.

작품을 보시면 그런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으실 거예요.(웃음) 공유 오빠는 멋있지만, 무리없이 역할에 잘 어울리고요. 저도 자연스럽게 했어요. 화장도 거의 안하고요. 노메이크업을 하고 싶었는데, 아예 화장을 안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번들거리거든요.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요. 그래서 그건 누르고, 눈썹을 그리는 정도만 했어요.

▲ 전작 tvN '라이브'에서는 강한 여경의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엔 김지영이에요. '정유미가 러블리한 '로코' 이미지를 벗으려 한다'는 반응도 있더라고요.

이미지 탈피라기보단 그냥 다 돌고 도는, 지나가는 바람 같아요. 저의 대표작, 대표 장르라는 것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받아들여 주시면 재밌지 않으실까 싶어요.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로 공감을 받으면 더 감사할 거 같아요.



▲ 센 역할, 액션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하고 싶어요.(웃음) 영화 '염력'을 하면서 액션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 이걸 할 수 있구나' 싶었죠. 앞으로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작업을 통해 새롭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신선해요. 이런 부분으로 인해 제 마음에 플러스되는 부분이 있구나 싶고요.

▲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요?

어떤 반응을 보이실 지 정말 궁금해요. 원작과 결말이 다른데 소설은 소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영화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저희 영화 결론이 좋은데, (관객들도) 좋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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