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지금 변화는 빙산의 일각…더 과감하게 바꾸겠다"

입력 2019-10-22 17:15
수정 2019-10-23 01:54
“굉장히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하신 것처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연단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과 객석에서 질문하는 사람 모두 수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웃음도 여러 차례 터져 나왔다. 행사가 끝난 뒤에 ‘셀카’를 찍는 시간도 있었다. 연예인이 참석한 토크쇼 같은 분위기였지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직원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연 ‘변화 공감 토크’ 얘기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를 반영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우리는 정체됐다”

이날 낮 12시20분 현대차그룹 본사 서관 2층 대강당은 직원들로 빼곡했다. 약 1200명이 모였다. 행사 시작 10분 전에 자리가 가득 차 일부 직원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직원들 환호성 속에 연단에 오른 정 수석부회장은 “이 자리에 오게 돼 너무 영광이고, 직원들의 건강한 모습을 봐서 즐겁다”고 말문을 열었다. 직원들이 질문하면 정 수석부회장이 답하는 방식이었다.

대화 주제는 ‘함께 만들어 가는 변화’.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게 된 이후 과감하게 조직문화를 바꾸고 있다. 복장을 자율화했고, 임직원 직급 및 호칭 체계를 단순화했다. 종이 문서로 결재받는 문화도 없앴다. 산업계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던 현대차그룹이 가장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직원 능력을 200~300%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빙산의 일각이고 앞으로 더 과격하게 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사 이후 우리 회사는 꾸준히 변화했지만, 지난 5~10년은 변화가 조금 정체됐다고 자평한다”며 “우리가 조금 부족했던 만큼 더욱 과감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주문도 했다. 보고문화 개선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문서 결재가) 싫었는데 그동안 바꾸지 못했다”며 “서로 마주 앉아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결재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조직 간 협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사일로문화(각 부서가 담을 쌓고 다른 부서와 소통하지 않는 문화)는 우리가 공무원보다 더 심하다는 평가가 있다”며 “본부장급 임원은 타 부서와 일을 얼마나 협업하는지가 중요한 능력이고, 협업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조직문화 개선의 목표도 공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동차 판매 대수로 세계 1위를 하는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기업문화를 가지는 게 목표”라며 “사람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회사, 직원들이 스스로의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동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직원과 농담 주고받은 정의선

업(業)의 본질에 대한 생각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이 하는 일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휴대전화는 시각적으로 사람을 연결하지만, 자동차는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다는 설명이다. 미래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그 비중은 50% 정도로 줄어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나머지 중 30%는 개인용 항공기,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 직원이 “현대차 주식을 갖고 있는데 고점에 물려 있어 걱정이다”고 하자 정 수석부회장은 “저도 현대차 주식이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맞받았다. 후배들에게 조언해 달라는 요청에는 “제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일부 직원은 정 수석부회장에게 질문하면서 ‘수부님’이라고 불렀다. 직원들끼리 수석부회장을 줄여서 쓰는 표현이다. 정 수석부회장도 “수부라고 불러도 된다”고 화답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