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의 2박3일 일본 방문 일정이 22일 시작됐다. 이날 오후 열린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이 이번 일정의 핵심이다. 하지만 관심은 24일 오전으로 예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면담에 쏠린다.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으로 꼬여 있는 한·일 관계 회복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지일파’ 이 총리의 방일은 정부 최고위급 특사 파견의 성격을 띤다는 분석이다. 화해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아베 총리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불행한 역사는 50년, 우호·교류 1500년”
이 총리는 이날 오전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기)로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오후 1시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왕궁)에서 열린 일왕 즉위식 참석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 총리는 즉위식 행사 뒤 2001년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 씨 추모비에 헌화한 뒤 저녁에는 일왕이 주재한 궁정 연회에 참석했다.
이 총리는 이날 출국에 앞서 서울공항에 환송 나온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이번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양국 관계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비 헌화 행사 후엔 “두 나라는 길게 보면 1500년의 우호·교류의 역사가 있고, 불행한 역사는 50년이 안 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50년이 되지 않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우호·협력 역사를 훼손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24일 아베 총리와 ‘10분+α’ 면담
아베 총리와의 면담은 24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다. 시간은 10분 남짓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의미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작년 10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처음 이뤄지는 최고위급 정부 인사 간 양자 면담이란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은 그동안 실무 차원의 물밑 대화를 해왔지만 강제징용 배상안에 대한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역시 관계 회복의 선제 조건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총리의 방일 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며 “우선 일본 경제보복 조치가 완전히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면담으로 양국 관계의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통상·안보 분야의 협력 재개에 양국이 공감대를 이뤘다’는 정도의 포괄적 합의만 도출돼도 향후 관계 진전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음달 한·일 정상회담 이뤄질까
일각에선 이 총리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연내 양국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정상 레벨의 대화를 포함해 일본과의 대화에 열린 입장”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우리는 대화의 기회를 닫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언급했다.
꽉 막힌 한·일 관계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선 양국 정상 간 만남을 통한 톱다운 방식의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음달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칠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테이블에 마주 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한·일 관계 회복은 한·미·일 지역안보 공조와 맞물려 있다”며 “지소미아 종료일(11월 23일) 전에 양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다자회의가 열리는 만큼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