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산업계에서는 환경·노동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지만 정부와 국회는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해 과감한 손질에 나서지 않고 있다.
산업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대표적 규제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주 52시간 근로제 등이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외환경이 불확실한 가운데 국내 환경·노동규제가 강화되면서 한국이 점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게 산업계의 지적이다.
경영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중소기업(50명 이상~300명 미만)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화관법 이행을 위해선 장외영향평가, 위해관리계획서 제출, 취급시설 검사, 기술인력 확보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중소기업들은 투자여력 부족 등으로 이를 이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양태석 중소기업중앙회 뿌리산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제16차 뿌리산업위원회’에서 “화평법상 화학물질 등록 의무로 소요되는 수천억원의 비용을 영세기업이 감당하긴 힘들다”며 “주변 국가인 일본과 대만처럼 정부가 물질 등록에 필요한 자료를 생산해 기업에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규제 개선 논의에 불이 붙을 때마다 환경단체 등이 즉각 반발하면서 논의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났다. 환경규제가 국내 부품·소재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환경단체들은 즉각 집회를 열고 “일본의 수출규제를 등에 업고 이익을 챙기려는 고도화된 전략”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후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조치법’은 화평법·화관법을 개정하는 대신 화학물질 등록면제 심사기간을 단축해주는 데 그쳤다. 주 52시간 근로제 확대에 대비한 보완 입법이나 특례규정 신설도 특별법에서 빠졌다.
산업계는 안전 강화를 위해서도 제도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반도체 소재 중소기업 대표는 “소재산업은 화학물질 없이 돌아갈 수 없는데 공장을 증축하거나 제품을 늘릴 때 인허가를 받으려면 화평법, 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험물안전관리법,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 최소 다섯 가지 법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비슷한 법을 두고 인허가를 내주는 기관이 제각각이어서 현장의 혼란이 큰 만큼 중복규제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