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29)] 마음과 마음을 잇는 한·메콩 협력을

입력 2019-10-21 17:27
수정 2019-10-22 00:08
“한국은 왜 메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인가요.” 최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주관한 한·메콩 협력 학술대회에서 한 태국 학생이 불쑥 던진 질문이다.

올해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맞아 다음달 하순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린다. 이어 메콩강 유역 5개국(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한·메콩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메콩 국가들과는 2011년 이후 매년 외교장관급 회의를 해왔는데 이번에 정상회의로 격상했다. 메콩 국가들과 정상회의를 하는 나라는 일본, 중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외교 다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메콩 국가들과의 협력 증진은 신남방정책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아세안의 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세안 국가 간 개발 격차다. 후발국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및 베트남과 협력을 강화해 개발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아세안 통합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메콩 국가들은 또 연 6%대의 역동적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발전 가능성이 큰 기회의 땅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핵심 협력 파트너인 베트남에 이어 제2, 제3의 협력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최근 미·중 무역갈등으로 야기된 국제 경제체제의 불확실성 증대로 메콩 국가들의 글로벌 가치사슬 진입과 통합이 중요해지고 있다.

연 6% 성장하는 '기회의 땅'

메콩지역은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하는 중국은 메콩지역을 동남아와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핵심 루트로 간주해 대규모 인프라 건설 및 투자 사업을 통해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 메콩 5개국과 ‘란창·메콩협력체’를 출범시켜 2016년부터 정상회의를 격년으로 열고 있다. 일본은 2009년부터 매년 정상회의를 하며 중국의 영향력 견제를 위해 대규모 개발원조(ODA) 사업을 벌이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2009년 ‘메콩하류지역 이니셔티브’를 선언한 미국도 지난 8월 방콕에서 미·메콩 외교장관회의를 했고,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메콩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초 태국, 미얀마, 라오스 방문 시 메콩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라오스 비엔티안의 메콩강변에서 발표한 ‘한·메콩 비전’에서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이어지길 기원하며 공동번영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한·메콩 지역이 공동번영하고, 인프라 구축 등 연계성 강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메콩강위원회, 확대메콩유역프로그램, 애크멕스(ACMECS: 에야워디·차오프라야·메콩 경제협력전략) 등 여러 메콩 협력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영향력 경쟁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한·메콩 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강대국들과 규모 면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경쟁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우리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은 메콩 국가들과 역사문제와 영토분쟁이 없으며 지역패권 추구 국가도 아니다.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시련을 겪은 메콩 국가들은 강대국의 대규모 지원을 고마워하면서도 이들의 영향권 아래 놓이는 것에 우려와 경계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같은 아시아 문화권으로 식민지배를 경험했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전쟁 폐허를 딛고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을 추구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콩 국가들은 역경 속에서도 평화와 번영을 성공적으로 일군 한국의 발전 전략과 경험, 노하우를 얻고 싶을 것이다.

다음달 열릴 첫 번째 한·메콩 정상회의에서는 ‘한강·메콩강 선언’이 채택될 예정이다. 한·메콩 협력의 명확한 비전 및 전략과 협력 방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인프라, 정보통신기술(ICT), 녹색성장, 수자원개발, 농업 및 농촌개발, 인적개발 분야에서 많은 협력사업이 시행돼 왔으나 앞으로는 좀 더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람 중심의 사업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농촌개발 체계화·활성화 지원을

첫째, 농촌개발 사업과 중소기업의 지역 가치사슬 진입을 지원해야 한다. 미얀마, 라오스에서 새마을운동을 접목한 농촌개발 사업이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보다 체계화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교육 및 과학기술 분야 역량강화 사업이 절실하다. 셋째,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보건, 수자원 관리, 생물다양성 보존, 재난·재해 관리 및 문화재 보존·복원 사업 등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메콩강위원회 등 국제적인 메콩 협력기구와 협력하되 특히 태국이 주도하고 우리가 개발파트너로 참여한 메콩 국가 경제협력체 ‘애크멕스’를 통해 상생협력의 파트너십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